대전문화재단-대전작가회의 공동기획

 

유용주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그 나이로는 경험하기 힘든 길을 걸었다. 거의 모든 작품이 그의 삶과 직접적 연관이 있고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삶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작품은 현실 안에서 이뤄지기 마련이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그래서 더 현실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가 유용주다.

그는 1991년 ‘오늘의 운세’라는 시집을 자비로 출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비 출판으로 세상의 눈길을 잡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오늘의 운세’는 신춘문예를 비롯한 온갖 잡지에 투고해 낙방했던 글들을 모아 낸 시집이었는데 그 선택이 그가 문단으로 걸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우연히 그의 시집을 본 신경림·백낙청 선생의 관심으로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에서 원고 청탁 편지를 받고 가을호에 ‘목수’ 외 2편을 발표했다. 지금 창비는 신인문학상을 운영하지만 그 당시엔 창비에 원고를 실으면 그게 바로 등단을 의미했다. 데뷔를 하지 않은 채 시집을 냈고, 그것도 자비 출판을 했는데 그 시집을 보고 창비에서 원고 청탁이 온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 힘으로 1993년 창비에서 시집 ‘가장 가벼운 짐’을 펴냈다. 이 제목은 사실 역설이다. 유용주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의 삶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어린 나이에 겪기 힘든 경험을 통해 시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사업의 사자도 모르던 시인은 1994년 목수 일을 내려놓고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우유 배달을 하다 1년 만에 보급소를 차렸지만 끝내 대출금까지 몽땅 날리는 신세가 됐고, 1996년 사업을 접었다. 그 뒤 솔출판사에서 펴낸 두 번째 시집 ‘크나큰 침묵’에 그가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게 표현돼 있다.

1997년 그는 제15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서서히 문단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문단에 변방이란 게 어디 있고 중심이라는 게 어디에 있겠는가.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그에게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다. 형이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고, 병간호를 하던 형수가 암으로 사망했다. 소방관이던 장인어른이 화재 진압 도중 중상을 입었고, 매형이 심장병으로 급사했다. 시인으로 막 출발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현실은 첩첩산중이었다.

돈이 없었다. 그래서 산문집 원고를 강제로 맡기고 선인세를 끌어다 쓰는 일까지 하게 됐다. 그때 나온 산문집이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다. 그런데 그게 대박을 터뜨렸다. MBC ‘느낌표’ 프로그램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 그 책이 선정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생활고의 문턱에서 허덕이다 단비를 만났다.

그보다 앞선 2001∼2002년 자전소설 ‘마린을 찾아서’를 펴냈다. 그가 시인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잘 나타낸 성장 소설이다. 2009년에는 장편소설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를 발간했다. ‘어느 잡범’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작가 유용주다.

물론 시도 계속 썼다. 2005년 시집 ‘은근살짝’을 발표했다. 유용주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 시집에 잘 나타나 있다. 밑바닥 인생들의 삶이 밟는다고 다 밟히고, 밟힌다고 다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한 편의 소설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또 깊이 뻗어나가는 유용주의 시선은 시와 소설 외의 다양한 성과물을 낳았다. 2004년 서민들의 삶이 어디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산문집 ‘쏘주 한 잔 합시다’를, 2012년에는 동료와 선·후배를 위해 썼던 발문을 정리한 산문집 ‘아름다운 사람들’을 펴냈다.

2011년 유용주는 20년 넘게 머물던 서산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집 옛터에 집필실을 지어 이사했다. 빚에 쫓겨 내놓았던 삶의 터전을 40년 만에 다시 찾아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2013년 근 20년 동안 써왔던 단상들을 모아 산문집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을 펴낸 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집·작품집을 내놓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떠나 그의 작품을 얘기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유용주는 작품에 자신의 삶과 현실을 투영하는 일을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그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김희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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