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담뱃값이 오르면 끊긴 끊어야겠지?’ 연말 2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못내 결정이 쉽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매년 금연 결심을 하고도 작심삼일이 되곤 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며칠 담배를 참다 다시 못 이기는 척하며 피워댈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했다. 금연이 아닌 적당한 금연 제스처를 취하려는 꼼수가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던 금연 결심이 20여 일이 지났다. 생각보다 대견하다. 이렇게 쉽게? 달라진 게 뭐지?

사실 이번 금연 결정을 하면서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아이들과의 약속이었다. 차마 아이들과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은 아버지로서의 체면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 운동하는 두 아들 녀석들의 간곡한 금연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일 뿐 결정적이진 못했다. 아마도 현재 금연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아이들과의 약속이 아닌 2000원이나 오른 가격부담 때문이다.

‘2000원이 그렇게 큰 부담이냐?’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커피 전문점의 커피 한잔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기 위해 소모되는 군것질 값도 따지고 보면 2000원을 상회한다. 담배 값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거의 매일 사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으나 그것이 전부일순 없다.

지난해 담배 값 인상 논란이 한창일 무렵 이미 다른 해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끊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담배 값 인상이 경제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거니와 담배 값을 인상하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싫었다. 그냥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으면 욕 한번 하고 말았을 텐데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담배 값 인상의 명분을 대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지 싶었다. 담배 값 인상보다도 세금인상이라는 인식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도랑 친 김에 가재 잡는다’고 몇 번이고 실패했던 금연도 성공하고 받아들이기 싫은 정부정책에 대한 나름 항의도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최근에는 금연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계기들이 더 커지고 있다. 연말 연초 불거지고 있는 각종 증세논란이 그것이다. 연일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하락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유가하락의 체감 만족도는 그리 높지 못하다. 기름 값의 60%나 차지하는 세금은 유가하락과 무관하게 똑같이 걷히기 때문이다. 연말정산 논란도 뜨겁다. 당초 정부는 올해부터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연말정산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주장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서민들이 연말정산 효과를 보지 못해 ‘13월의 세금폭탄’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담배 값, 기름 값에 이어 연말정산까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조세정책에 더 거부감이 생긴다.

지난해 세수확보가 어려워 누리과정, 무상급식 논란 등을 촉발하면서 교육 및 복지정책의 축소 우려가 심화됐다. 그럼에도 증세는 어렵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실질적인 세수확보 방안으로 얘기되고 있는 법인세 인상은 정치권에서 2년여 간 해묵은 논쟁만 하고 있다. 정부는 법인세 인상은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종부세 혹은 부유세 역시 증세는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며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담배세, 유류세, 연말정산 등 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벌, 기업,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증세는 어렵지만 서민 증세는 너무도 쉽게 이뤄지고 있다.

연초 거세게 불고 있는 금연 열풍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국민들이 건강에 대한 욕구가 한층 더 커졌으니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연말정산하며 다시 담배를 피워 물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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