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送人(우중송인)-
把酒悤悤黃菊花(파주총총황국화)요,
出門浩浩碧江波(출문호호벽강파)를.
留君三日君終起(유군삼일군종기)하니,
風雨滿天將奈何(풍우만천장내하)오.

-빗속에 벗을 보내다-
술잔을 잡으니 떨기마다 노란 국화요,
문을 나서니 넓고 넓은 푸른 강 물결이네.
사흘 간 머물게 했더니 마침내는 그대는 일어나니,
풍우(風雨)가 하늘에 가득한데 장차 어찌 하려는지.

◆지은이 이병연(李秉淵) : 1652(顯宗12)년에 태어난 문인.
이 시에는 풍우 속에 벗을 보내는 이별의 정이 간절히 드러나 있다.
비바람은 사람의 길을 아득하게 한다. 옷은 함빡 젖게 될 것이고, 습기는 피부 깊숙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길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풍우를 피하여 길을 나선다. 그러나 지은이의 친구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만류를 뿌리치고 풍우 속에 길을 떠나려 하는 것인가.

제1, 2구는 정교한 대우(對偶)를 이루고 있다. 대우는 시적인 미감을 확장시키고 심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 시의 제1구의 ‘黃菊花(황국화)’, 즉 ‘노란 국화’와 ‘碧江波(벽강파)’, 즉 ‘푸른 강 물결’은 모두 인간의 심성을 아름답게 해주고, 또 ‘노랑’과 ‘푸름’의 시각적 대비를 통하여 이 시를 더욱 생기 있게 해준다.
이러한 생활과 경치 속에서 사흘을 고운 벗과 머물렀지만, 벗은 더 머물러주지 않고 비바람 속에 길을 떠나는 것이다. 여기서 보면 지은이의 진실로 보내고싶지 않은 그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의 “풍우(風雨)가 하늘에 가득한데 장차 어찌 하려는지(風雨滿天將奈何).”의 구절에서는 ‘떠나지 말았으면’하는 심정을 한탄같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풍우는 틀림없이 행인의 앞길을 근심스럽게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비록 풍우 속에 길을 떠난다 해도, 결코 미련하다거나 근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도리어 아득한 옛 시대에만 있을 수 있는 풍류요 멋으로만 느껴진다. 아마 그것은 지은이가 벗을 보내는 전경을 애틋하지만, 또한 너무나 조화롭게 읊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시는 간절한 이별의 정을 비유적으로 읊어낸 작품이라 하겠다.


평화로운 농가 전경 모든 것이 행복이네

- 田家行(전가행) -
婦乳女兒夫食子(부유여아부식자)하야
就陰閒坐淸溪水(취음한좌청계수)를.
終朝耕盡上平田(종조경진상평전)하니,
且放牛眠芳草裏(차방우면방초리)를.

- 농가(農家)의 노래 -
아내는 딸에게 젖 주고 남편은 아들에게 밥 먹이고서
그늘에 나아가 맑은 시냇가에 한가히 앉았네.
아침이 끝날 무렵 밭을 다 갈고서 들판에 올라가니,
놓여진 소는 방초(芳草) 속에서 졸고있네.

◆지은이 임준 : 1718(숙종44)에 태어난 문인.
이 시는 농가(農家)의 평화로운 전경을 ‘그늘’과 ‘맑은 시내’, 그리고 ‘잠자는 소’ 등을 장면을 등장시켜 안정감 있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 시대의 농업은 수고에 비해 대가가 너무 적기에 사람들의 기피 직종이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란 기치 아래 농사가 중요한 산업으로 대접을 받았었다. 그리고 농촌은 벼슬살이에 지친 사대부들도 결국 돌아가고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진(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팽택령(彭澤令)의 자리를 버리고 전원에 돌아가 손수 농사를 짓는 여가에 시를 지으며 일생을 보냈었다. 자기가 씨뿌려 자기가 거두어 먹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당당한 직업이 바로 농업이기에, 옛날에는 곧잘 ‘청빈(淸貧)’과 ‘무욕(無慾)’을 추구하는 문인이나 은자들이 이 직업에 종사하기도 했던 것이다.

농부는 이른 아침에 소를 몰고 쟁기를 지고서 논을 갈러 갔었다. 가는 길에는 푸른 안개와 맑은 이슬이 그를 맞아주었다. 부지런히 밭을 갈다보니 어느새 해는 하늘 위에 불쑥 솟아났다. 이때 아내는 아이를 엎고 걸리고서 아침밥을 머리에 이고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왔다. 들판에다 자리를 펴고 밥을 꿀맛같이 먹다가, 부인은 딸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남편은 아들에게 밥을 떠 먹였다. 단란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식사가 끝나자 나무 그늘이 있는 시내 가에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윽고 하든 일을 마저 마치고 짐을 챙겨 천천히 넓은 들판으로 나왔다. 논을 갈러 나왔던 누런 소는 어느 새 제 멋대로 먼저 걸어나왔다. 그리고 갖가지 꽃이 활짝 핀 풀밭에 누워 지친 몸을 쉬게 하면서 주위의 풀잎을 뜯어먹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여기에 이르러 전원의 평화는 마침내 그 극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인간 세상의 살림살이를 자연세계와 잘 배합하여, 행복의 이상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