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고전번역가

- 詠子規(영자규) -
客散西園意轉凄(객산서원의전처)한데,
牧丹花靜月初低(목단화정월초저)를.
千古騷人頭白盡(천고소인두백진)이나,
南山終夜子規啼(남산종야자규제)를.

- 자규(子規)를 노래하다 -
서쪽 정원에 객이 다 떠나니 서글픔이 이는데,
목단 꽃은 다소곳하고 달은 막 지려하는구나.
천고의 시인들은 백발이 되어 저승길 다 갔지만,
남산의 자규(子規)는 밤이 다하도록 울부짖는구나.

◆허유(許愈) : 헌종(憲宗)과 철종(哲宗) 년 간의 시인.
이 시는 객 떠난 빈집에 목단꽃과 달빛과 자규새를 등장시켜 허전한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좋은 분위기는 배합이 맞는 것끼리 어우러져야만 이루어진다. 가을을 읊을 때는 황엽(黃葉)에 추풍(秋風)을, 봄 정원은 춘화(春花)와 봉접(蜂蝶)을 배치시켜야 잘 어울린다. 그림 같은 명 장면은 이처럼 서로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벗들이 어울려야만 탄생되는 것이다. 이태백(李太白)에게 시와 술이 없다면, 어찌 이태백다운 이태백이 되겠는가.

초여름 깊은 밤 목단꽃과 배합을 가장 잘 이루는 짝은 바로 달빛이다. 불그스레한 목단꽃잎에 비록 지는 달이긴 하지만 광채를 쏟으면 꽃과 달빛이 함께 영롱해지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고요함과 아름다움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분위기를 뒤바꾸는 매체가 있으니, 바로 자규새이다. 자규새의 울음 때문에 목단꽃과 지는 달로 이루어진 전경은 다시 서글픔을 표현하는 전경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자규새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산천을 통곡의 바다로 만드는 주인공이다. 일명 ‘소쩍새’라고도 하는데,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구슬프고 간절한지, 멀쩡한 사람은 슬프게 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은 울게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무수한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의 작품에 자규새가 등장했던 것이다. 목단꽃과 달빛은 감미로운 분위기를 만들지만, 자규새의 울음소리는 감미로움 속에 슬픔의 정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자규새와 자규새의 울음이 핵심적인 소재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감정의 세계와 전경의 세계가 이음새도 없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 하겠다.

 

 

어떤 詩로도 표현 못하는 금강산의 신비로움

- 長安寺(장안사) -
矗矗尖尖怪怪奇(촉촉첨첨괴괴기)하니,
人仙鬼佛摠堪疑(인선귀불총감의)를.
平生詩爲金剛惜(평생시위금강석)이나,
及到金剛便廢詩(급도금강편폐시)를.

- 장안사(長安寺) -
우뚝하고 뾰족하고 괴이하고 신기하기에,
사람·신선·귀신·부처님이 모두다 의아해 하네.
평생의 시 공부는 금강산을 읊기 위해서였는데,
막상 금강산에 오고 보니 시 짓기를 포기했네.

◆지은이 신좌모(申佐模) : 1799(정조23)~1877(고종14) 년 간의 문신.
이 시는 신비하고 수려한 금강산(金剛山)을 고도의 시적 재능을 발휘하여 극적으로 부각시킨 작품이다.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땅은 한반도요, 한반도에서 제일 아름다운 땅은 바로 금강산이다. 그래서 이 땅의 우리 조상들은 금강산을 무한히 동경하여, 마치 순례자의 성지(聖地)처럼 여겼었다. 지은이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은이는 평생 시 공부를 한 이유는 금강산을 읊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이다. 실재로 지은이는 시에 일가를 이루었는데, 그 중에서도 과시(科詩)에 특히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었다.

제1, 2구에서는 내금강(內金剛)의 장안사(長安寺)에서 본 금강산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금강산은 일일이 말로써 다 표현할 수가 없는 별세계(別世界)인 것이다. 그래서 ‘우뚝하고 뾰족하고 괴이하고 신기하다’는 말로 함축하고, 다시 “사람?신선?귀신?부처님이 모두다 의아해 하네.”라고 하여, 금강산이 참으로 신비한 산임을 강조한 것이다. 즉 금강산은 사람?신선?귀신?부처님이 모두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하고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신묘한 산이란 것이다.

제3, 4구에서는 지은이 자신이 보는 금강산의 모습을 파격적인 수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일생의 시 공부는 금강산을 읊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금강산을 목도하고 나니 시를 지을 생각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만약 자신이 금강산을 읊는다면 금강산을 모욕하는 행위라 생각했고, 또 시를 읊어봐야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은이는 언어로도 생각으로도 드러낼 수 없는 세계가 바로 금강산임을 말하면서 금강산의 빼어남을 극도로 강조한 것이다.

금강산을 읊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금강산을 더 잘 드러낸 지은이는 불언지교(不言之敎)를 설한 노자(老子)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운 선사(禪師)의 의도에도 부합하는 지혜의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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