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이완구 총리의 사임 이후 지역 언론을 통해 충청권 대망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상처받은 충청권 대망론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한다는 논리다. 민심이 요동치고 충청권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지역 언론의 눈에는 이완구 총리의 자리가 그만큼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 숱한 의혹 제기에도 침묵하던 지역 언론이 아니던가. 지역 주민의 상실감이 아닌 지역 언론의 상실감의 표출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취임 62일 만에 사퇴한 이완구 총리. JP이후 충청권 대망론의 대세를 이루던 그가 결국 성완종 게이트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사퇴했다. 역사상 가장 짧은 총리직 수행이라는 오명도 함께 남겼다. 2013년 재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 이후 승승장구 할 것만 같았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이렇게 끝날 것처럼 보인다.

이완구 총리의 중도하차는 이미 예견될 일이었다. 아니 총리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정계복귀 후 새누리당 원내 대표를 역임하며 총리로 지명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는 충청권 대망론은 지역 여론과 함께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파국은 거기서 시작됐다.

누구도 예상 못한 총리의 자질. 총리 인준 청문회에서 하나 둘 벗겨진 그의 민낯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자녀의 병역기피, 재산형성과정의 문제, 황제 특강. 여기에 국보위 근무 논란까지. 언론을 자신의 입맛대로 쥐락펴락 하는 그의 언론통제 의혹까지 총리 후보로 지명돼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역 언론은 이를 외면했다. 그저 충청권 총리 후보의 낙마만은 원치 않은 듯 보였다. 그런 지역 언론의 바람이 통해서였을까? 이완구 총리는 연이은 총리 낙마의 반사이익과 충청권의 여론을 등에 업고 결국 총리가 됐다.

숱한 의혹이 채 가시지 않아 식물총리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런 이완구 총리가 꺼내든 카드는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뚝심이었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사정의 칼날을 빼들었다. 전임 정권이었던 이명박 정권 당시 추진된 자원외교에 대한 전 방위 사정을 통해 난국을 돌파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사정의 칼날은 자신에게 향했다.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의 자살과 함께 성완종 게이트 파문의 당사자로 지목됐다. 그리고 그의 정치 인생은 끝이 났다.

이완구 총리의 사퇴는 자업자득의 결과다. 총리 인준 당시 숱한 의혹을 넘어서긴 했으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그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겠지만 총리가 됐다는 사실에 안주했다.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상황에서 한순간 잘못하면 더 이상 회생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냉철히 자신을 되돌아보고 판단했어야 했다.

스스로 총리의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고 집착을 내려놨어야 했다. 순간을 모면하고자 했던 그의 행보는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돼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더 큰 거짓을 만들었다.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언론은 통제 밖에 있었다. 거짓 해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토록 자신을 떠 받쳤던 충청권을 기망하는 말 또한 하지 말았어야 했다. 순리를 따르지 않은 그의 선택은 결국 62일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돌고 돌아 총리의 자리는 그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는 점만 다시 확인됐다.

사필귀정(事必歸正). 결국 모든 일들은 바른 이치대로 돌아간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녹녹하지 않다. 너무도 많은 희생과 대가를 감내해야 만 한다. 그 몫은 오로지 국민들에게만 떠 넘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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