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어느 도시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마치 어렸을 적 열린 문틈으로 옆집 내실을 보았었던 설렘과 같다. ‘저렇게 사는구나’ 엿보았다는 미안함보다는 궁금함이 풀린 즐거움이 더 컸던 기억이 있다.비엔나를 슬쩍 들여다 보자. ‘이렇게 멋지게들 살아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름다운 장밋빛 도시색, 격조 있는 건물 사이로 왈츠는 흐르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빈은 다녀왔지만 비엔나는 못 가 봤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빈의 영어식 이름이 비엔나이기 때문이다.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서 도나우강 상류에 위치한 유럽의 고도(古都)다. 면적은 415km² 정도이고, 인구는 대전시와 비슷한 160만 명이 살고 있다. 고도의 향취를 맡으려는 전 세계 관광객들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나라의 생김새가 파이프 같은 오스트리아의 끝부분에 비엔나가 자리잡고 있다. 비엔나는 144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정치, 음악,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수백년 이어져 오다가 1805년 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가 됐다. 그 후 1954년 오스트리아가 강대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다시 수도가 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비엔나의 모든 것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고도에서 풍겨나는 ‘품격’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비엔나에서 배울 점은 격조 높은 도시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모두의 공통된 ‘목표의식’이다.환상적인 비엔나의 건축양식은 오스트리아식의 바로크라 할 만큼 개성 있게 독자적으로 발전해 그 예술성을 뽐내고 있다. 유명한 세계적 음악가들을 배출한 이 도시의 창작 영감은 아마도 건축물에서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족적들이 시내에 즐비하다.가 볼 만한 곳은 고딕양식의 대표적 성당인 슈테판성당, 쇤부른 궁전, 케른트너 거리, 음악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시청사, 음악가 묘지, 호프부르크 왕궁, 국립 오페라 극장 등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쇤부른 궁전은 파리의 벨사이유처럼 황제의 방들과 황후의 방들로 이뤄진, 끝이 없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웅장함 및 화려함과 함께 높은 작품성과 예술성을 뽐낸다. 이곳에 거처했던 황제 중 프란트요셉 황제는 스스로 ‘이 나라의 첫 번째 하인’이라고 일컬으며 정치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섬김의 정신을 가진 정치인들이 더러 좀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은 한낱 꿈일까.수작업으로 태어나는 유명한 비엔나 도자기는 구경만하고 와야 한다. 비싸다.거리에 나서면 어디에선가 빈소년합창단의 청량한 무공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 이 도시에서 활약했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하는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공연 티켓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그 유명한 ‘비엔나 왈츠’는 알프스지방에 수백 년 전부터 전래돼 온 민속춤이다. 경쾌함을 좋아하는 비엔나 사람들의 기질과도 맞게 비엔나 왈츠는 빠른 속도로 추게 된다. 잠깐이지만 왈츠의 도시답게 관광객들에게 왈츠를 쉽게 가르쳐 주는 곳도 있다. 그런데 대개의 한국남자들은 매우 ‘쑥스러워’하며, 술이나 한잔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유상혁 박사는대전시 도시건설방재국장, 건설본부장, 환경녹지국장을 역임한 뒤 이사관으로 퇴임했다. 지금은 우송대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전시도시계획위원회·충남도도시계획위원회·대전시건축위원회·대전시도시디자인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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