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夜行(야행) -
幽澗冷冷月未生(유간냉냉월미생)한데,
暗藤垂路少人行(암등수로소인행)을.
村家知在山回處(촌가지재산회처)니,
淡霧疎星一杵鳴(담무소성일저명)을.
- 밤길 -
시냇물은 차갑고 달은 뜨지 않았는데,
등 넝쿨 드리워진 오솔길엔 인적이 드물구나.
산모퉁이엔 촌가(村家)가 있는 줄 알겠으니,
묽은 안개 듬성한 별빛 아래 다듬이 소리 울리네.

◆지은이 조씨(曹氏):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 수 없음.
이 시는 시골 마을의 밤나들이 풍경을 그려낸 작품인데, 매 상황을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이 능숙히 묘사해내고 있다.

지은이는 여인의 몸이다. 옛 시절의 양갓집 여인들은 낮에는 물론, 밤에는 더 외출을 금기시했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도 지은이는 장옷을 둘러쓰고 과감히도 밤길을 거닐었던 것이다. 그것도 인적 없는 산길을 말이다. 아마 지은이는 풍부한 감정과 파격적인 의식을 내면에 감추고 있는 사람이리라. 그렇기에 연인들로서는 배우기 어려운 시도 익히고, 또 그 솜씨로 밤길을 주제로 한 수의 시를 읊어내기도 한 것이다.

지은이는 남몰래 깊은 밤 산길을 배회하면서 층층시하(層層侍下)에서 답답해진 가슴을 풀고 해방감을 느껴보고자 한 것이다. 정신적인 힘이 용솟음치는 여인에게서의 규중 생활이란 감옥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한 번씩 외출을 나섬으로써 정서를 예리하게 담금질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은이에게서의 밤나들이는 바로 생명수와도 같은 것이다.

시냇물은 차갑게 흐르고 달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데, 등나무 넝쿨 무성히 드리워진 길에는 인적이 끊어졌다. 이 외진 길을 홀로 걷는 것을 보면, 지은이는 대담한 성격과 주체할 수 없는 자유의식을 소유한 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밤 안개 피어나고 별들이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 산길을 걷노라니, 저쪽 산모퉁이에 인가(人家)가 있음을 지은이는 짐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따닥… 따닥… 다듬이 소리가 밤 공기를 타고 울려오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마치 사극 속의 한 장면처럼, 옛 시대의 정경을 멋스럽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옛 여인으로서는 선택하기 힘든 밤길을 시의 주제로 하여 지었기에, 그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하겠다.

 

죽음 앞둔 불안감 삶에 대한 아쉬움

- 臨死作(임사작) -
芙蓉城裏玉簫聲(부용성리옥소성)한데,
十二欄干瑞靄生(십이난간서애생)을.
歸夢悤悤天欲曙(귀몽총총천욕서)한데,
半窓殘月映花明(반창잔월영화명)을.
- 죽음에 임하여 짓다 -
부용성(芙蓉城) 안에는 옥퉁소 소리 울리는데,
열 두 굽이 난간 아래엔 상스러운 안개 피어나네.
저승길은 먼동이 틀 때 바빠지는데,
창가에 지는 달은 꽃에 비치어 더 밝구나.

◆지은이 윤씨(尹氏): 장모(張某)의 부인,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이 시는 죽음을 앞두고 지은 작품인데, 겉으로는 흔적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안으로는 비장함이 가득 서려 있다 하겠다.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불가(佛家)에서는 생사(生死)의 무상함을 노래하기를, “태어남이여! 한 조각 구름 일어남이요. 죽음이여! 한 조각 구름 사라짐인 것을.”이라 했다. 생사의 이치는 정녕 이와 같거늘, 그러나 미혹한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는 생사가 참으로 대사(大事) 중에 대사인 것이다.

인생은 알지 못할 곳에서 왔다가 알지 못할 곳으로 간다. 그래서 죽음을 앞두게 되면, 생사를 초월한 대도인(大道人)이 아니고서는 모두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자력(自力)으로 생사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 이들은 바로 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종교의 그늘로 피신을 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장하게도 미지의 세계를 향하기 전에 일어나는 불안감, 그리고 슬픔을 시를 통해 달래보고자 했다. 그래서 지은이의 이 시에는 겉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속에는 삶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진하게 담겨있는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의식이 가물거릴 때, 저 멀리서 옥퉁소 소리 은은히 들려오는데, 대청 마루 아래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자욱하여 여기가 저승인 듯 착각하게 한다. 날이 차츰 밝아오려 할 때, 저승길이 바빠질 것임을 예감하는데, 창문에 비스듬히 비친 잔월(殘月)은 꽃에 반사되어 더욱 밝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광채를 화려히 발산하는 잔월은 마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모으는 지은이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이승에 대한 강력한 미련이 담겨있는 듯도 하다.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임종시(臨終詩)를 지었다. 그러나 지은이의 임종시는 슬픔의 감정을 도리어 화려함으로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슬픔을 화려함 속에 감추었기에 그 슬픔은 더욱 애절한 것이다. 죽음이란 큰 변고(變故)를 미려(美麗)한 시로 달랠 여유를 가졌다는 데서 본다면, 지은이는 필시 범상한 여인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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