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除夕感吟(제석감음) -
無爲虛送好光陰(무위허송호광음)하니,
五十一年明日是(오십일년명일시)를.
中宵悲歎將何益(중소비탄장하익)이리요,
自向餘年修厥己(자향여년수궐기)를

- 한 해의 마지막 밤의 감상을 읊다 -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을 하다보니,
내일이면 어언 쉰에 한 살을 더 먹는구나.
한밤에 서글피 탄식해본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제부턴 심신(心身)을 수양하며 여생을 보내리라.

◆지은이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영조48)∼1832(순조32) 년간의 인물.
이 시는 성리학적(性理學的)인 인생관을 가진 사대부가의 연인이 한해를 보내면서 지은 자성시(自省詩)이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사대부가의 여인들 중에는 가사(家事)를 이끄는 주부로 머물지 않고, 학문과 예술에 깊은 경지를 개척한 명인(名人)들이 많아졌다. 지은이 역시 이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라 하겠다.

지은이는 늘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면서 무심히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한해가 바뀌는 시점을 앞두고 돌이켜보니, 어느새 쉰하고도 한 살을 더 먹는 시점에 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자는 세월의 빠름을 이렇게 읊었다. “未覺池塘春草夢(미교지당춘초몽)인데/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이라.”, 즉 “연못의 봄풀이 아직 잠을 깨기도 전에 뜰 앞의 오동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낸다.”고. 주자 표현처럼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가는 무형의 생명체이다.

공자는 50대에 ‘지천명(知天命)’, 즉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했는데, 지은이는 자신을 돌이켜보니, 지천명은 고사하고 아무 것도 성취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해를 보내는 갈림길에서 바로 이 점을 탄식한 것이다. 이에 유학(儒學)을 숭상했던 지은이는 여생을 자신을 닦는 수양에 매진하기로 다짐을 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에서 보듯, 공자를 배우는 유자(儒者)들은 도를 이루는 것을 가장 값진 보배로 여겼었다.

노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그럼으로써 인생을 보람차게 정리해 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은이는 이를 알아 실천하려 한 점에서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현인(賢人)’이라 하겠다.

◆한시 이야기: 고려 중기부터 송시(宋詩)가 한국의 시단을 주도했다. 조선 중종(中宗) 때 이르러 박은(朴誾)·이행(李荇) 등에 의해 송시는 극성했다. 이들에 앞서 김종직(金宗直)은 송시를 기반으로 하지만, 한편으로 엄중(嚴重)과 방원(放遠)을 중시하여 당시(唐詩)의 영역에 접근하려 했다. 이를 계승한 이위(李胃)·신종호(申從濩) 등, 그리고 그 후인들에 의해 당풍의 시는 번창해가기 시작했다.

'답청' 시설 평화로운 봄날 풍경  

- 踏靑(답청) -
凌亂楊花弄夕暉(능란양화롱석휘)한데,
女娘聯臂踏靑歸(여낭연비답청귀)를.
何來雪片耽香蝶(하래설편탐향접)은
猶向??頭款款飛(유향차두관관비)를.

- 답청(踏靑) -
흩날리는 버들 꽃 석양을 희롱하는데,
여인들은 팔을 이어 답청(踏靑)을 하고 돌아오네.
어디선가 향기 찾아 날아온 눈 조각 같은 나비는
오히려 비녀 위를 향해 너풀너풀 날아오네.

◆지은이 운초(雲楚): 성천(成川)의 기녀로 대략 1800년 전후에 생존.
이 시는 답청(踏靑)의 시절을 맞아 그 풍경을 읊은 작품으로, 봄날의 생동감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하겠다.
지은이는 부용당(芙蓉堂)이라고도 했는데, 나중에는 김이양(金履陽)의 소실이 되었다. 시에 능통하여 ‘운초집(雲楚集)’도 남겼다.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치는 찬 겨울이 다 지나고 나면 초목은 힘차게 번성을 하고, 벌·나비 그리고 사람들은 무리 지어 이리저리 바쁘게 나다닌다. 절기(節氣)의 변화와 만물은 함께 호흡을 하는 것이다. 답청은 삼월삼짇날에 음식과 술을 먹고 생풀을 밟으며 노니는 행사로, 봄날 최고의 낙(樂)은 바로 이 날에 있는 것이다.

답청절이 찾아오니 봄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버들 꽃도, 여인도, 향기도, 나비도, 초목도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한 폭의 그림 속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며 봄날의 세상을 꾸미는 것이다. 버들 꽃은 바람에 휘날리며 석양(夕陽) 앞에 어른거릴 때, 젊은 여인들은 팔을 잡고 줄지어서 생풀을 밟다가 들판을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푸른 초원에 들꽃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봄날의 젊은 연인은 화사한 꽃과도 같은데, 더욱이 푸른 들판에 서있으니 보는 이의 눈에는 정녕 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비들이 여인을 꽃으로 착각하여 순식간에 날아든 것이다. 그 나비의 모습은 너무나 하얗고 또 가벼워 마치 백설의 한 조각인 듯 보였다. 그 고운 나비는 여인의 비녀를 꽃술인 듯 생각하여 비녀 주위를 향해 나풀나풀 날아가니, 아! 봄 들판의 연인은 영락없이 한 떨기 꽃인 것이다.
이 시는 풍요한 시정(詩情)으로 나비와 연인을 조화시켜 답청의 풍광을 실감나고 또 화사하게 그려내었다 하겠다.

◆한시 이야기: 이위(李胃) 신종호(申從濩) 등의 세대를 뒤이어 당시(唐詩)의 풍격을 흥성시킨 시인으로는 신광한(申光漢)·김정(金淨)·김식(金湜)·기준(奇遵)·임억령(林億齡)·김인후(金麟厚) 등이 있다. 이들은 송시(宋詩)의 인위적인 시풍, 즉 호방(豪放)과 신경(新警)을 멀리해 당시의 중후하면서도 자연미가 담긴 시풍을 따랐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