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메르스 사태가 확산 일로를 걷고 있을 즈음 두 달여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한 재미 교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동행했던 아이가 고열과 기침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응급실을 가야 했지만 메르스가 의심돼 우선 주치의에게 연락했더니 한국의 메르스 상황을 알려줘 고맙다며 보건당국에 연락을 취한 뒤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일단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이후 20여 분 뒤 다시 전화로 10여 가지 문진 후 다행히 메르스는 아닌 것 같다며 지정병원을 안내해줬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응급실에서 이름을 말했더니 다른 출입문으로 안내하며 무균실 같은 곳으로 안내해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단순 감기로 판명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건당국과 의료진의 대처에 놀랐다고 한다. 미리 연락을 받아서였겠지만 아이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질병전문 의료진과 아동전문 의료진이 함께 검사를 진행하고 마스크 등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의료진은 환자에게 메르스에 걸려도 자신들이 지켜줄 것이다, 당신들의 책임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위로하는 등 환자를 안심시키며 다른 환자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동선을 안내하는 등 발 빠른 대처를 보였다고 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이 사연을 접하며 다시 한 번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되돌아보게 된다. 초기 단계 정보의 공유와 신속히 준비된 매뉴얼에 따른 대처. 여기에 덧붙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환자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를 심어주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미국에서 경험한 이 경험담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과정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정상적인 과정을 새롭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유독 한국 사회는 최근 몇 년간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이 느끼는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 있는 현재 역시 신뢰의 붕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와 시스템의 부재. 사회적 안전망이 국민을 지켜줄 수 없다는 불신이 더 큰 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정보와 소통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외신들조차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이유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문제가 터지고 사태가 확산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치부 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문제만 터지면 정확한 실상을 밝히기보다 괴담 유포자를 찾아내겠다는 정부와 공권력의 발상에 국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사태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 공개를 통해 이를 대비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메르스 사태가 초래한 혼란은 다시 돌이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무너진 정부와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가 쉽게 회복되긴 힘들기 때문이다. 무너진 방역체계는 고사하더라도 정부의 현실 인식은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킬 의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태를 축소 은폐하기보다는 정확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에 따른 정부의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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