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모퉁이 하얀 목련이 환하게 웃음 짓고 있구나. 이내 봄이 오겠구나 싶었는데 찬바람이 곁을 맴돌며 고집부리네. 그래도 밉지 않은 건 봄이 곧 찾아 올 거라는 믿음 때문이겠지?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반이 됐으니 우리가 만난 지도 일 년이 훌쩍 넘었구나. 그 동안 수현이에게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그렇지? 며칠 전 퇴근길에 만개한 목련 꽃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단다. 왜냐구? 너무 예뻐서지. 보고 있는 건 목련인데, 마음속에는 수현이의 미소가 아른거렸어. 일 년 만에 찾아 온 목련처럼 활짝 핀 네 미소를 거의 일 년 만에 보게 되니 ‘둘이 참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어제 급식 시간에는 감동 그 자체였단다. 급식실 도우미 네 명중 한 명이 너였지. 네가 열심히 급식판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난 우리 반 친구들과 급식을 먹기 시작했지. 그런데 어느 샌가 넌 내 앞에 ‘떡’하니 서있더구나.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넌 엷은 미소와 함께 넙죽 인사를 했었지. 앞치마를 두른 채. 내가 급식실에 온 걸 알고는 내 자리까지 찾아와 인사를 한 거야. 지금까지 우리 반 친구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나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행동에 선생님은 순간 얼음이 되었단다. ‘급식 맛있게 드세요’라는 의미의 네 인사에 난 오히려 급식을 먹을 수 없었다는 걸 수현이는 알까?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단다.‘우리 수현이가 마음의 문을 많이 열었구나. 참 많이 밝아졌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4학년이 돼 부쩍 밝아진 네 모습에 순간순간 많이 놀라고 있단다. 건망증이 심한 나를 알기에 네가 먼저 나서서 챙겨주고, 친구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기 일인 양 살펴보고 도와주고…. 무엇 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선생님은 행복하단다. 이렇게 선생님이 수현이 행동 하나 하나에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는 이유를 알지? 수현이의 마음 속 먹구름이 너무 짙어 웅크리고 있었던 지난 모습들 때문이지.수현아, 기억나니? 1년 전 3월 개학날부터 넌 친구들과 어울리기는커녕 쉬는 시간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교실 구석에 숨어 있곤 했지. 지난 날 친구들과 여러 사람들로 받았던 많은 상처들로 넌 친구들도, 세상도 모두 두려워만 하고 있었지. 그뿐만 아니었지 속상한 일이 있으면 몰래 교실을 나가서 학교 구석진 곳에 한참을 숨어 있곤 했지. 그런 너랑 숨바꼭질 놀이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수업을 하다가 교과서나 공책을 구기는 건 다반사였고, 안경이나 옷, 책가방을 운동장이나 길에 던져버리고 가기도 여러 번이었지. 여리디 여린 네 마음속에는 큰 상처들로 피가 철철 나는데 약을 바르는 방법을 몰라 오히려 더 많은 상처들을 내고 있었던 거지. 그런 행동들에 네 어머니도 속상했고, 선생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가장 선생님을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내가 바보라서, 멍청이니까”라는 너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단다.그러던 네가 이렇게 변하다니…. 얼마 전 토요일에는 오후에 남아서 의찬이, 문수랑 자장면을 먹었었지. 입가에 자장을 잔뜩 묻히고는 의찬이랑 ‘자장 드라큐라’라며 환하게 웃는 사진 한 장을 찍었었지. 네가 그렇게 웃으며 사진 찍은 것도 처음이었다는 거 아니? 작년엔 사진기를 들이대기만 해도 온갖 인상을 찌푸리고 했었는데…. 이젠 선생님께 장난도 치고, 말대꾸도 하며 옳지 않은 얘기를 할 때면 따지기도 하지. 이렇게 하루하루 밝아지고 있는 수현이가 너무 대견스럽단다.수현아, 많이 좋아지기 했지만 아직도 네 마음 속 상처라 다 아물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단다. 얼마 전 속상한 일로 펑펑 울었었지?“괜찮아, 수현아, 울지마”라는 내말에도 네 눈물은 멈추지 않더구나. 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내 기운이 전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그랬지.“난 태어난 거 자체가 잘못이에요.”그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더라.‘마음 속 먹구름이 하얀 솜구름으로 된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가자’라고 새롭게 다짐해본다.수현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니? 몰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가족, 친구들 선생님 등 네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 줄 수 있겠니? 그리고 또 하나!‘넌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것도 잊지 않길 바래. 이건 선생님이 너에게 항상 하는 말이지? 환한 미소가 너무 예쁜 미소 천사 수현이, 앞으로도 많이 웃고 많이 떠들고, 많이많이 장난치길 바래. 아무리 장난쳐도 밉지가 않은 건 지금 네 가슴 속에 하얀 솜구름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야.수현아, 우리 내일 웃으며 만나자. 안~녕!2010년 4월 13일 수현이를 사랑하는 담임선생님이(대전시교육청 제6회 아름다운 편지 공모작)배명숙(대전 대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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