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지역 언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 우려와 걱정의 수준을 넘어 절망에 가깝다. 지역 언론의 어려움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더 이상 ‘희망’이 없어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특히 지역 신문의 끝모를 추락을 어디까지 봐야 할까?

과거 지역 신문에 대한 우려는 급격히 성장하는 뉴미디어의 탄생과 스마트기기의 확산 등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영향이 컸다. 여론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신문업계가 권한을 넘어선 권력에 기댄 채 특권을 유지하려던 관행도 한몫했다. 신문시장의 위기론이 지속됐지만 무한경쟁시대에 접어든 미디어 산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문 산업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급격히 추락했던 신문 시장의 위기 속에서도 변해야 한다는 신문사 종사자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기에 작은 희망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다. 생존에만 혈안이 돼 정작 언론 본연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역 출입처 관계자들 사이에선 몇 몇 지역 신문사 기자들을 두고 언론사 기자인지 광고국 직원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능력 있는 기자의 조건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기사를 잘 쓰는 기자보다는 광고를 잘 따오는 기자가 능력 있는 기자가 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신문 지면도 독자의 눈높이보다는 광고주의 눈높이에 맞춰지고 있다. 지역 신문 독자의 대부분이 지역 공직사회 및 공공기관, 기업에 국한되다보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향변도 가능할 듯싶다. 하긴 지역 신문의 유일한 독자이자 광고주인 이들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쏟아 내는 게 무슨 문제가 될까? 지역 주민을 독자로 확보하지 못한 지역 신문의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가 심각한 상황이다.

며칠 전 몇몇 인터넷 신문을 통해 한 지역 신문사 내부에서 직원 간 상해 사건이 터졌다는 짤막한 보도를 접했다. 다행히 큰 불상사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감이 엄습했다. 개인사를 떠나 신문사 내부에서 행해지는 무리한 광고 할당과 압박이 사건의 원인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이 이어졌다. 생존 경쟁에 내몰린 신문사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기자들이 취재현장이 아닌 광고수주에 내몰리는 환경 속에서 기자의 자존감은 이제 사치로 치부되는 현실의 민낯이 드러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시 지역 신문, 지역 언론의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처한 현실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에서 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건 늘 싸움의 연속이었다. 늘 그래왔듯 한국사회의 언론 사주들은 저널리즘 구현에 관심이 없다. 언론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정권의 눈치를 봐가며 광고주의 입맛에 맞게 자사 기자들이 움직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언론사 생존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기자는 달라야 한다. 부당한 압력에 길들여져선 안 된다.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 한 줄의 기사를 써낼 수 있는 힘은 한 개인이 아닌 저널리스트가 돼야 가능하다. 언론사주의 언론사 생존을 위한 첨병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저널리스트로 생존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먼저다. 사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기 보다는 독자로부터 기자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기자가 기자다울 때 지역 언론의 희망도 다시 이야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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