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호수와 벗하다

 

스물한 번째 걸음, 19구간 청남대사색길

청주 문의면 산덕리 상산마을~326봉~청남대~문의면 노현리 습지공원
공식구간 14㎞, 7시간 / 청남대 포함 23㎞, 10시간

 

“어휴∼. 날씨 한 번 참 얄궂다.” 10월의 막바지, 완연한 가을 하늘 아래 초겨울 추위가 찾아왔다.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한 터라 그 추위의 강도는 한파와 같았다. 옷깃을 여미는 것으론 모자라 중무장을 하고 대청호의 가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참 특이한 경험이리라. 여름과 겨울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는 기후변화 분석 데이터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봄과 가을의 가치가 새삼 소중해진다. 지구환경의 메커니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민감하다.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갖고는 있지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다. 지구가 끊임없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거다. 더 늦기 전에, 지구가 병들어 봄과 가을이라는 선물을 선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필요한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책임감이다.

스물한 번째 걸음, 19구간은 청남대사색길이다. 사색(思索). 검색포털에 물어보니 사전의 뜻풀이는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이라고 돼 있다. 흔히 ‘사색에 잠긴다’는 말을 하는데 과연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사색이란 건 ‘상당히 긴 시간’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라 바쁜 일상의 시계에 길들여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사색은 사치다.

그래도 명색이 ‘사색길’인데 이 길 위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사치 좀 누려보자. 기회도 좋지 않은가.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최소한 소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가. 사색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통찰에는 다가서지 못해도 적어도 통찰로 향하는 계단 하나는 쌓을 수 있지 않겠는가.

19구간은 청주시 문의면 산덕리 상산마을에서 출발해 326봉을 넘어 청남대 제2관문으로 내려온 뒤 망향공원, 좌골삼거리, 괴실삼거리를 거쳐 노현리 습지공원에 도달하는 코스다. 공식구간은 14㎞, 약 7시간이 소요되는데 청남대를 빼놓으면 서운하다. 이번 여정은 청남대를 포함해 22㎞, 10시간이 걸렸다.

#. 설렘 가득한 아침 산행


여명이 밝아오자 대청호를 둘러싼 산줄기 능선이 윤곽을 드러낸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10월 30일 오전 6시 40분. 상산마을 정자 앞에서 신발 끈을 조여 맨다. 계절은 분명 가을인데 체감은 겨울이다. 수은주가 거의 0도 가까이 떨어졌다. 봄꽃을 시샘하는 추위처럼 단풍을 시샘하는 추위가 엄습했다. 추위는 그렇다 치고 매서운 칼바람이 단풍잎을 속절없이 떨어뜨리며 가을의 수명을 재촉하는 듯해 안타까움이 커지는 아침이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시간, 칼바람을 뚫고 여정을 시작한다. 한적한 시골마을길을 따라 산에 오른다. 마을 한켠, 보호수 역할을 하는 커다란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었다. 황금들녘과 호응하는 모양새가 제법 가을 운치를 자아낸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산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햇빛이 나뭇잎을 헤집고 들어와 숲에 생명의 기운을 뿌린다. 햇빛을 받은 숲은 다시 숨을 쉬며 생기를 발산한다. 대략 해발 200m 고지에 올라선 이후부턴 오른쪽으로 신탄진 도심이 눈에 들어오고 출발한지 약 3㎞ 지점에서 초소 하나를 발견한다. 청남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청남대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풍경이 가히 일품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터라 상산마을에서 청남대로 넘어가는 산행은 설렘 그 자체다.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설렘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초소에서 방향으로 틀어 서쪽으로 하산한다. 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청남대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 대청댐 수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간은 8시 30분. 청남대 입구(제2관문)로 내려오면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잡아야 하는데 청남대 관람을 위해 잠시 외도한다. 오전 9시 정각, 정문매표소의 문이 열린다. 개장 시간은 칼 같다.

#. 대통령 사유의 공간에 들어서다
1980년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옥천 금강부터 대청댐까지 산골짜기마다 물이 들어찼다. 거대한 대청호의 탄생이다. 경치가 얼마나 빼어났던지 당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은 이곳에 흔적을 남기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은 ‘영춘재’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1983년 6월 본관이 완공됐고 주변시설을 완성해 ‘봄을 맞이하는 곳’이란 의미의 영춘재(迎春齋)가 태어났다. 이후 1986년 7월 영춘재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란 의미의 청남대(靑南臺)로 명칭이 바뀌었다. 184만여㎡에 달하는 청남대엔 20여 년간 6명의 대통령이 89차례에 걸쳐 472일을 이곳에서 보냈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2003년 4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문 뒤 다음날 관리권을 청와대에서 충북도로 이관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이후 청와대는 국민에게 개방됐다. 지금까지 국민의 절반 이상인 약 2700만 명이 이곳에서 대통령들의 흔적을 만났다. 현재 재임시절 이곳에서 휴가를 보낸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등산로와 산책길이 호반을 따라 조성(11.1㎞)돼 있다. 대청호반의 정취는 순간순간이 감동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 조깅을 즐겼던 그 길의 끝에 초가정을 세우고 대청호를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초가정에서 김대중 대통령길을 따라 산에 오르면 제1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조망하는 대청호의 풍경이 최고의 장관이다. 매표소 인근에서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는데 645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짧은 대신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계단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 ‘행복의 계단’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 마음이 수고로움을 행복이라 하면 그게 행복인 거다.

#. 자연으로 돌아간 노현리 습지
청남대 제1전망대에서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그 빛은 대청호 수면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기운을 대청호는 온몸으로 받아낸다. 매 순간이 아쉬워 카메라 셔터를 아무리 눌러대도 두 눈을 통해 전달되는 감동까지 담아내진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행복의 계단을 따라 하산한 뒤 다시 공식 대청호 오백리길로 접어든다. 청남대 제2관문을 벗어나면 비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망향비’라 새겨져 있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호반의 아름다운 경관은 이곳에 태를 묻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들의 슬픔 위에 지어진 것임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청남대에서 문의면 시내까지 이어진 도로는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유명하다. 그런데 올 가을엔 찬바람의 등쌀에 못 이겨 조금 일찍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청남대부터 문의면 시내 방면으로 약 6㎞,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나무의 색감을 감상하고 대청댐 수문과 문의대교를 눈에 담으면서 도로가 이어진다. ‘좌골삼거리’ 표지판을 만나면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대청호의 북쪽 끝자락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발끝 통증과 피로감은 금세 잊힌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괴곡삼거리와 만난다. 청남대 방향으로 200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구석기시대 동굴 유적인 ‘작은 용굴’을 둘러 볼 수 있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 마치 용이 승천하기 전에 머물렀을 듯한 형태로 굴이 파여 있어 용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아쉽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다시 도로를 따라 1㎞ 걸으면 노현리 습지로 진입하는 길이 나온다. 대청호에 조금 더 가까워지자 새하얀 솜털을 나풀거리며 바람이 흩날리는 억새들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노현리 습지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조성된 소류지였지만 지금은 자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다양한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뤄 서식하면서 야생조류의 산란처·서식처 역할을 한다. 대청호가 맑고 건강한 데는 이 같은 습지의 역할이 크다.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하늘은 벌겋게 물든다. 대청호반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19구간 이렇게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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