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연말. 한 해를 정리하며 차분하게 다음 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송년 모임 등으로 들썩이던 연말 분위기도 제법 차분해 졌다. 퍽퍽한 살림살이에 거나한 송년모임 지출이 부담스러운 탓도 크다. 연말이면 크고 작은 문제로 사회가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도 늘었다. 다음을 기약할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들린다. 자의건 타의건 왁짝지껄 한 송년 분위기가 사라진 건 바람직한 일이다. 희망찬 다음 해를 기약하기 어려워 졌다는 점은 늘 고민거리다.

사는 건 그리 나아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책임 질 정치권은 서민들의 긴 한숨엔 관심도 없어 보인다. 민생 현안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인들의 연말 레퍼토리에 귀 기울일 국민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출마 예정 장관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도 이젠 새로울 것도 없다. 우리 지역을 이렇게 살갑게 챙겨왔다는 네거리 정당 현수막은 차디찬 겨울 바람에 나부끼기만 할 뿐이다. 공감 받지 못하는 정치권의 다짐은 등돌린 민심의 싸늘한 시선만 남았다.

개인적으로 퍽퍽한 삶을 꾸려가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올해 역시 한해를 조용히 마무리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87년 민주화 이후 빼앗겼던 국민의 권한이 회복하는 듯했으나 요즘 정치권은 국민의 뜻은 안중에 없다.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조차 무시한다. 집회 과정에서 벌어진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성을 끄집어 내 국민을 IS수준의 테러리스트로 둔갑시키는 대통령의 인식에 아연실색한다.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마저 부정하는 복면금지법을 추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떻게 나왔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집회 참가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은 행위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신고만으로도 가능한 집회를 불허한다는 법무부 장관의 대국민 담화는 정부의 역할을 넘어선 대국민 협박이다. 사법부의 판단을 넘어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양형까지 높이겠다는 법무부 장관은 태도는 정부 스스로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마저 뒤 흔드는 초법적 권한 남용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헌법 파괴 행위를 제지하고 입법 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할 여당 대표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벌써 선진국에 진입했을 것”이라는 발언이나 “민주노총은 무법천지 만드는 전문 시위꾼 집단”이라는 발언은 공당의 대표가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독재 정권에서나 가능할 법한 국가 지도자와 정부 관료, 여당의 대표 발언 치고는 어이 없음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맘에 안드는 것들 싹쓸어버려’라는 독재자의 마인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의 집회를 원천적으로 막기위한 차벽 설치가 국민의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위헌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집회, 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집회 불허 행위가 위헌이라는 결정 역시 유효하다.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 부정하고 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자를 단 한 번도 원한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연말이다. 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