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만 무관" 불공정게임 반발

국회의원 선거구 실종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5일 예비후보의 홍보물에 지역구 표시가 빠져 있다. 후보 관계자 측은 "지역구가 사라져 '지역을 살리겠다'는 애매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법정시한을 넘기며 촉발된 헌정 사상 초유의 ‘대한민국 선거구 부재’ 상황으로 20대 총선 정국이 ‘무법천지’가 된 가운데 공직에 몸담고 있는 입후보예정자들의 사퇴 규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는 4월 13일 실시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선출직 공직자들의 사퇴시한은 선거일 120일 전인 지난달 15일까지였고, 일반직 공직자들의 사퇴시한은 선거일 90일 전인 1월 14일까지다.

그런데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하며 ‘네 탓’ 공방만 벌이다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법정시한인 지난달 31일까지 선거구 획정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새해 들어 선거구 무효 사태를 초래했다.

이에 총선 출마를 저울질해 온 공직자들의 심기도 불편하고 심란해졌다. 선거구가 없는 상황에 선뜻 직을 버리고 모험에 나서기도, 국회의원 배지에 대한 뜻을 접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사퇴시한 적용이 논란이다. 정치권이 자초한 선거구 부재 사태 속에 공무원 사퇴시점을 공직선거법에 의거해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직 공직자의 경우 사퇴시한을 일주일 남겨 놓은 상황이어서 그 이전에 사퇴를 할 수 있는 여유를 두고 선거구 획정이 이뤄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선거구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사퇴를 하고도 예비후보로도 등록할 수 없는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선출직 공직자의 사퇴시한은 이미 20여 일 경과한 상태여서 향후 상황에 따라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 제53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구역이 해당 지자체 관할구역과 같거나 겹치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고자 하는 때에는 선거일 전 12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둬야 한다. 또 일반 공무원들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아울러 공직자가 각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경우에는 선거일 전 30일(3월 14일)까지 그 직을 그만둬야 한다.

대전시선관위 관계자는 “공직자 사퇴시한에 대해선 선거구 미획정과 관련해 별도의 지침이 하달된 것이 없다. 선거구는 부재하지만 현행법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거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 모든 법 규정이 역시 선출직 공직자인 현역 국회의원들과는 무관한 것이고, 이에 따라 법정시한을 어기는 위헌으로 선거구 부재 사태를 촉발시킨 현역 의원들과 법정 사퇴시한을 맞춰 현직을 버려야 할 정치 신인들 간의 ‘불공정 게임’ 문제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출마 여부를 놓고 목하 고심 중인 한 공직자는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 스스로 법을 어기고도 뻔뻔히 의정활동을 빙자해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데, 왜 우리 같은 힘없는 공직자들은 사퇴시한을 지켜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또 다른 고위공무원의 한 측근은 “밤을 새워서라도 선거구를 획정해야 할 현역 의원들이 자신들에게만 절대 유리한 현 상황을 즐기듯이 너무나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 분통이 터진다”라며 “시한에 맞춰 옷을 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다”라고 말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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