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대전민예총 이사장)

우리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전 문화예술의 발전을 한마음으로 기원하는 ‘문화예술인 신년하례회’는 지난 2010년부터 매년 대전문화재단 주최로 열리던 ‘화합의 한마당’이었다. 이 행사가 금년에 대전예총 주최 행사로 바뀌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행사명에서 문화계가 배제된 것을 비롯해 전국적인 연합예술단체 중 하나인 대전예총이 단독으로 행사를 주최하면서 문화원이나 대전민예총 등이 동참을 꺼리면서 “지역 문화예술계를 편 가르기 하는 부적절한 조치였다”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급기야 대전시의회 문화체육관광국 업무보고에서 대전문화재단이 그 책임을 엄중하게 추궁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행사 내용 또한 문제다. 예년에 없던 예총 회원단체들의 시상식을 행사에 포함시켜 문화계 인사와 예총이 아닌 예술단체 회원들이 졸지에 들러리가 돼 버렸다. 시상식은 대전예총 내 10개 협회 추천으로 각 부문별로 10명씩 대전시장 공로상과 대전예총 회장 명의의 예술문화상을 시상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예술인 신년하례회’가 예총만의 내부행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상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더구나 대전예총만의 잔치를 시에서 지원한 1500만 원의 행사비로 들러리까지 세워 치렀으니 ‘원님 덕에 나발’을 불었다고나 할까. 결국 시민의 세금이 문화예술계의 위화감을 조장하고, 대전예총의 상실감을 달래려고 행사를 ‘양보’(대전문화재단 대표의 시의회 발언)한 대전문화재단은 치도곤을 당했으니,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사실 대전문화재단 설립 필요성을 앞서 제기하며 여론 조성에 힘쓴 바 있는 대전민예총은 재단의 지속적인 발전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만큼 최근의 여러 사태로 대전문화재단의 위상과 역할에 많은 우려가 번지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간 각종 인사나 이사 공모 등에서 드러난 잡음 등을 보면서 인사권이나 실질적인 조정권 행사가 어려운 재단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재단의 그런 한계가 각종 파문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대전예총 밑에 대전문화재단’이라는 시의회 의원들의 뼈아픈 비판도 바로 그런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전문화재단은 지역의 문화예술계를 화합시키고 각종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부문 간 고른 발전을 유도해 지역민의 문화예술 욕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조정자로서의 균형 감각이다.

저울에 매단 물건과 추가 수평을 유지하도록 하는 비결은 양쪽의 형평을 맞추는 것이다. 무거운 쪽은 덜어내고 가벼운 쪽은 더해주는 이른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대전문화재단은 공공재단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 단체에 치우치거나 다른 쪽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부문별로 형편에 맞게 꼭 필요한 만큼 지원하고 또 지나치면 덜어내 나름의 형평을 유지해야 한다. 줄기나 잎이 웃자라면 오히려 그 나무는 연약해지고 그만큼 열매의 수확이 줄어드는 게 자연의 순리다. 사회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지역별·세대별·계층별·장르별 문화 격차가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면 이를 적극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화재단과 대전시가 갖춰야 할 바른 자세다. 대전문화예술계의 핵심세력인 대전예총이 상실감을 느낀다면 다른 부문과 단체가 느끼는 열패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이번 예술인 신년하례회에서 파생된 문화계나 다른 예술단체의 위화감은 봉합하기보다는 해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전문화재단이 조정자의 역할을 적극 회복하고 문화계나 대안 예술단체 등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민이 행복하고 살맛나는 대전을 기필코 만들겠다는 권선택 시장의 시정 목표와 그 의지를 많은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다. 특히 활력 넘치는 문화융성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권 시장의 비전에 문화예술계의 기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뚜렷한 문화예술시정이 실감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야당 시장과 야당 중심 시의회를 선택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서민들과 건전한 시민사회단체였음을 되돌아봐야 한다. 물론 대전시민 모두의 보편적 행복을 증진해야 하는 시장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적극적인 지지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대전문화재단 또한 특정단체 편향에서 벗어나 그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문화예술인 신년하례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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