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9일 만에 종결됐다. 대한민국 국회 사상 최장 기간 국회의원들의 무제한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개별 의원 역시 12시간 가까이 발언한 정청래 의원이나 이에 앞서 10시간을 넘긴 은수미 의원의 발언이 새삼 주목받기도 했다.

문제는 언론을 통해 보도된 필리버스터 정국은 핵심은 빠진 채 야당 의원들의 발언시간에 초점이 맞춰졌다. 필리버스터가 며칠간 진행될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A 의원의 발언 시간을 B 의원이 며칠만에 깼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단순한 흥미위주의 보도로 태러방지법을 왜 반대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소수에 그쳤다. 일부 종편보도는 한 술 더 떠 일부 출연자와 진행자를 앞세워 의도적인 폄훼로 일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사는 남달랐다. 지난 주말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진행된 국회 방청석은 시민들의 방청 행렬이 이어졌다.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국민의 85%가 필리버스터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예상 밖(?)의 국민 관심이 집중됐다. 단 몇 분 만에 무더기 법안을 통과시키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익숙했던 국민들이 아니던가. 국민들의 사생활, 인권 침해 우려가 높은 테러방지법안을 두고 응당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검증 토론을 이어 간다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의 이런 관심 속에 문제가 된 테러방지법의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공개됐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이 없으면 테러방지 활동을 못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차고 넘칠 정도로 관련 법안은 마련되어 있었다. 대테러 대응을 위한 ‘국가테러대책회의’는 지난해 프랑스 파리 테러 사태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개최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라는 신분까지 몰랐다고 한다. 사이버테러에 대한 대응 법안 역시 없는 것도 아니다. 국가사이버안전규정과 사이버안전센터 등이 존재한다. 테러를 포함해 국가 위기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법과 체계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테러방지법에는 가뜩이나 민간인 사찰과 정치 개입 의혹을 사고 있는 국정원의 권한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불법 도·감청과 국정원 사찰의혹, 대선개입 의혹으로 정쟁의 중심에 서왔던 국정원에 개인의 금융거래, 통신기록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포괄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여기에 더해 테러대응기관을 국정원 산하에 두도록 하고 있어 무소불휘의 권한 남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테러 예방을 이유로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사이버 공간을 마구잡이로 뒤지고, 심지어 포털, 쇼핑몰, 언론사까지 관리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국정원 기밀유지를 이유로 이를 통제할 기관이 사실상 전무해 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정부의 의도대로 국가 정보기관에 의해 국민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할 수 있는 파놉티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 필리버스터의 종결로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 표결 처리가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사회 역시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장치 해제를 둘러싼 FBI와 애플의 대립이 논란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둘러싼 정보 기관과 스마트폰 회사의 대립을 넘어 의회 차원에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테러방지법 강행에 앞서 국가기관이 과도하게 국민들의 개인정보 및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없었는지 충분히 검토했어야 한다. 국회는 국민들에게 테러방지법으로 인한 국민들의 권리 침해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지 보고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