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 장양왕이 되다①

당연히 태자 자초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가 장양왕이었다.

자초가 왕위에 오르자 후사를 위해 왕후를 맞아야 한다는 중신들의 진언이 이어졌다. 왕후는 당연히 진나라 명문대가의 규수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일부 중신들은 서로 자신들의 집안 규수를 내세우려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자초는 단호했다.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왕위에 올랐으니 여불위와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과인이 오늘에 이러러 선왕들의 빛나신 업적을 이어받아 왕위에 올랐소이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은 왕후를 맞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과인은 조나라에 가 있을 때 이미 혼인을 했던 몸이라 그 태자비를 왕후로 맞을까 하오이다.”

그러자 중신들이 벌 떼 같이 일어서며 반대의 기치를 내걸었다.

“아니 되옵니다 대왕마마. 마마께옵서는 이 나라의 주인이시고 천하의 주인이 되셔야 할 분이시옵니다. 그런 마당에 입에 담기 어려운 사사로운 정리로 왕후를 맞아서는 아니 될 줄 아옵니다.”

중신들은 하나같이 반기를 들었다. 그런 분위기를 뒤엎은 것은 여불위였다.

“신 여불위 아뢰옵나이다. 조나라에 계시는 태자비께서는 대왕마마께옵서 참으로 어려운 시절에 아픔을 함께한 분이시며 마마께 장손을 안겨주신 분이시옵니다. 그분들을 하루빨리 진나라로 모셔와 왕후로 맞으시고 태자로 봉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정리가 아니라 대업을 이루신 대왕마마의 의리 있음을 만천하에 약조하는 것이옵나이다.”

여불위가 부리부리한 눈을 돌리며 중신들을 살피자 그들도 조금은 주눅이 든 모습으로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자초는 일부 조정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희를 왕후로 맞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조희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중신들은 들으시오. 하루빨리 조나라에 있는 태후비를 왕후로 천거토록 하고 과인의 아들 영정을 태자로 삼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시오. 그리고 조나라에는 사람을 보내 태자비와 과인의 아들을 왕후와 태자의 예로 받들어 모시라고 분명하게 전하시오. 그러지 않는다면 훗날 진나라의 분노를 살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확하게 전하란 말이외다.”

그의 의조는 참으로 단단했다.

조희는 자초와 헤어진 지 9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경사스러운 전갈을 받았던 것이다.

왕후의 격식을 갖추어 모셔오라는 진나라의 명이 떨어지자 조나라는 호들갑을 떨었다. 진나라의 노여움을 산다면 단참에 멸국의 화를 입을 수도 있던 상황이라 그들을 극진히 받들어 진나라로 보냈다.

조희와 영정을 맞은 장양왕 자초의 심정은 유달랐다. 조희를 보는 순간 그녀가 조나라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밤을 보냈던 그 여인인지를 의심했다.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눈가에는 잔주름이 고였고 피부는 집 나온 고양이처럼 까칠하게 변해있었다. 곱디곱던 손도 옛 같지 않았다. 그동안의 고초를 돌이켜보면 가슴이 아려왔지만 여인으로 그녀를 접하자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자초는 조금은 실망한 눈빛으로 조희를 맞았다. 하지만 그녀를 맞지 않았다면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란 점에서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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