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대전은 더 이상 핵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니다. 하나로 원자로를 비롯해 원자력 연구 시설이 집적돼 있다. 국내 원전 원료로 사용되는 핵연료 생산 및 의료용 방사선 물질을 생산하는 시설 역시 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방사선 폐기물이 저장된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한전원자력연료 제3공장 증설 문제와 맞물려 유성구 원자력안전 조례 제정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국가의 원자력 정책과 관련된 연구, 생산 시설이 집중되어 있지만 연구, 실험용이라는 이유로 관리의 규제 대상에서는 늘 제외되고 있다. 제대로된 정보가 공개되는 것도 아니다. 대전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2건의 실험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실험을 추진 중이다.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실험은 정부가 추진 중인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따른 준비 과정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과정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를 통해 우라늄을 농축하고 소듐냉각고속로를 통해 원자력발전을 하게 된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열에너지와 방사능이 남아 있다. 가까이에서 노출되는 사람은 숨질 만큼 위험한 물질이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엄청난 피해로 뒤바뀔 수 있다. 소듐냉각고속로 실험 역시 안전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특히 냉각재로 사용되는 소듐(나트륨)은 물과 공기가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 때문에 ‘핵 재난’의 잠재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원전 사고의 경우 냉각재로 사용된 흑연이 폭발함으로써 발생했지만 소듐은 흑연보다 더 폭발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가 이미 실험을 중단했다. 일본은 각종 사고로 인해 가동이 중단된 채 천문학적인 관리비용만 쏟아 붓고 있다. 미국 역시 경제성과 안정성을 이유로 관련 사업을 아예 접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인 원전 정책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원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낮은 경제성, 높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연구, 실험용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어 없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사고 위험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전시민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 모든 연구와 실험은 150만 시민이 밀집한 대전에서 진행된다. 누구도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한 실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심각한 안전성의 문제를 극복한다 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또 있다.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긴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도 핵폭탄의 원료가 될 수 있는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원전이 대규모 냉각수 사용으로 인해 바닷가에 위치해 있지만 건식재처리 과정을 거치는 소듐냉각가속로의 경우 내륙에 원전 건설이 가능하다. 원전 확산이 더 용이해 질 수 있다. 더불어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방사능폐기물을 재사용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역시 방사능폐기물은 발생하게 돼있다. 이래저래 핵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다.

국가의 정책적 필요성에 의해서라지만 150만 대전시민을 볼모로 한 무모한 줄타기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도 대전시도, 지역 정치권도 이 위험천만한 핵 실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대전시민의 안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지금이라도 이 무모한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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