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부품·블루투스 모듈 등 개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전도유망하다는 평가는 비교우위, 즉 성공 가능성을 의미한다. 열정과 뚝심을 양분 삼는 나무는 떡잎부터 다른 법이다. 대전시가 매년 지정·관리하는 유망중소기업이 그렇다. 굴곡과 역경을 딛고 내일의 블루칩을 꿈꾸는 대전 유망중소기업. 그들의 현재 진행형 성장기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훌륭한 교과서이자 잘 사는 도시 대전의 씨알 굵은 동력이다. ‘2015년 선정 대전 유망중소기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17. 성진테크윈
지역 중소기업 상당수는 대전테크노밸리에 있다. 집적화에 따른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구도심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작지만 강한 기업’을 증명한 곳이 있다. 성진테크윈이 주인공이다. 성진테크윈과 거래하는 기업 중에는 ‘제너럴일렉트릭’, GE라는 글로벌 기업도 있다. 뛰어난 기술력은 어디에 있든 눈에 띄는 법이다. 그야말로 낭중지추(囊中之錐)다. 성진테크윈을 이끄는 이계광(56) 대표와의 만남은 왜 성진테크윈이 낭중지추인지 설명하는 자리가 됐다.

이계광 성진테크윈 대표
◆영업은 발로 뛰어야 한다
경북 김천 출신인 이 대표는 영남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다니던 기업은 마산에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맡은 일은 하청업체가 가져온 부품을 확인하는 품질관리직이었다. 다국적기업이었던 만큼 그가 다니던 회사의 하청업체들은 대부분 한국에 적을 두지 않은 회사들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기업의 하청업체였던 ‘정풍물산’이 납품 중 큰 실수를 했다. 품질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기업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납품을 중지해야 할 정도였단다. 이 대표는 ‘성실하던 하청업체가 단 한 번의 실수로 거래가 끊기면 안 된다. 토종기업인 만큼 내가 도와줄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줘야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정풍물산의 실수를 덮었다. 다행히 이 대표 선에서 문제가 정리됐다. 한숨 돌릴 때쯤 이번엔 자신이 다니던 기업에서 일이 터졌다. 갑자기 왕성해진 노조문제로 기업이 투자를 끊기로 한 것. 이 대표는 부득이하게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느니 경력을 살려 관련 사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성진테크윈의 전신인 ‘성진산업’이 탄생한 순간이다. 다행히 과거 연을 맺었던 정풍물산이 큰 도움을 줘 사업은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전국의 전자제품을 다루는 업체 목록을 작성해 1년 동안 발로 뛰며 구매담당자를 만났다. 물론 사업 초창기여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꾸준한 R&D와 AS 등 그의 노력을 양분삼아 거래처를 30개 이상 늘렸다. 연매출은 20억 원을 돌파했다.

“사업이 안정화가 될 때쯤 가장 큰 고객이었던 정풍물산이 3년 만에 부도가 났습니다. 큰 고객을 잃으면서 망연자실할 법도 했지만 그때 제 머리를 꽝하고 때리는 것이 있었죠. ‘하청이 아닌 진짜 내 사업을 해보자’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미국에서의 꾸준한 스카우트
현 위치인 대전 동구 인동으로 이전한 성진물산은 점점 세를 불렸고, 해외 진출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막연히 해외로 사업 확장을 겨냥하고 있을 때 한 기업이 이 대표에게 접근했다. 웬만한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스위치를 납품할 업체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냐고. 회사생활 때 다뤘던 제품인 만큼 자신 있었기에 바로 승낙했다. 알고 보니 세계적인 기업 ‘제너럴일레트릭(GE)’이었다. 해외에 성진물산의 기술력을 뽐낼 기회가 오자 기술(Tech)이 있으면 승리(Win)할 수 있다는 합성어를 만들어 법인명을 ‘성진테크윈’으로 바꿨다.

비록 조그만 기업이지만 세계적인 기업인 GE에 납품을 하면서 성진테크윈은 단숨에 글로벌기업들의 눈에 띄게 됐다. 여러 업체가 성진테크윈을 유심히 지켜봤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차세대 전투기인 F35 개발을 앞둔 미국의 군수업체였다. 해당 업체는 본격적으로 전투기 개발에 나서기 전 이 대표에게 접촉해 협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국방산업, 특히나 항공산업은 생소해서 처음엔 고사했다고 한다. 퇴짜에도 불구하고 성진테크윈의 기술력에 반한 군수업체의 대표는 끈질기게 이 대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 회사를 직접 보고 나서 결정해도 되지 않겠냐’면서 미국으로 초청까지 했을 정도로 구애했다.

“F35니 뭐니 했지만 사실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수업체 대표가 계속 함께 일하자고 조르고 결국 미국으로까지 초청하니 그냥 ‘미국 구경이나 한 번 해보지’라는 마음으로 하늘길에 올랐습니다. 강력하게 거절할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떨리거나 하진 않았어요.”

군수업체는 유비가 제갈량을 모시듯 이 대표 대접에 공을 들였고 자신의 회사를 보여주며 국방·항공산업은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엄청나게 자랑해댔단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콩밭에 가있었다. ‘언제 돌아가나’ 했던 이 대표는 초청의 마지막 코스인 오하이오의 항공기박물관에 가게 됐는데 자신의 눈으로 국방·항공산업의 수익성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미국과 유럽, 전 세계의 유구한 국방·항공산업의 역사를 보게 됐고, 앞으로 국방·항공산업은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곧바로 군수업체와 오는 2035년까지 F35개발을 함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도 인정한 실력, 한국에선…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서긴 했지만 성진테크윈은 F35만 바라보며 사업하기엔 규모가 작았다. 꾸준히 사업을 수주해야만 회사가 돌아갈 수 있었다. 국방산업, 특히 항공산업에 뛰어든 만큼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다가 정부가 순수 국산 기술로 헬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가 접했던 정보는 국산헬기프로젝트(Korea Helicopter Project·KHP). 미국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함께하는 만큼 이 대표는 KHP에 당장 뛰어들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성진테크윈의 이력을 넣은 사업신청서를 국방부에 제출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는 KHP를 ‘떼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국방부는 성진테크윈에게 KHP에 선정된 기업의 하청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며 사실상 퇴짜를 놨다. KHP로 국산 기술을 도입하려 했지만 마땅한 기업을 찾지 못해 해외기업을 선정하려 한 것이다. 과거 성진물산 시절부터 하청업체의 애환을 알고 있어 국방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성진테크윈이 GE 납품은 물론 F35까지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어필했다. 이 사업을 따지 못하면 회사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었기에 사력을 다했다.

“F35에만 매달리기엔 성진테크윈의 자금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업에도 뛰어들어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KHP가 시작됐고 상당히 자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탈락하고 말더군요. 정부 쪽에선 마땅한 국내기업이 없다고 판단해 해외기업을 선정하려 했고 성진테크윈의 이력을 설명하며 강력한 사업 참여 의지를 표했습니다. 결국 정부도 손을 들고 성진테크윈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진정한 산업역군은 중소기업 종사자들
어렵사리 KHP를 따낸 성진테크윈의 연매출은 최근 40억 원을 돌파했다. 세계적인 기업과의 거래, 2035년까지 F35에 납품하는 등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륙양용장갑차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성진테크윈은 꾸준한 R&D로 다양한 국방산업에 뛰어들며 사업을 주도한다.

하지만 어려움은 여전히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인풋에서 아웃풋까지의 기간을 버티는 것. 성진테크윈은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R&D부터 제품 출시 이후까지 수익을 내는 기간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한다. 영업직원을 채용하거나 다른 직원에게 영업직을 함께 해보라고 권유해 볼 만하지만 가뜩이나 경기도 어렵고 직원들이 힘들어할까 봐 그러지도 않는다. 대신 이 대표가 직접 영업전선을 누빈다.

“중소기업 정책들은 현장에서 느끼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수익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이를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는 중소기업은 셀 수도 없죠. 그럼에도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여기까지 성장한 이유는 바로 중소기업을 위해 땀을 흘리는 직원들이 있어서입니다. 그들이 보람을 갖고 일을 할 때 저 역시 보람을 느낍니다.”

글로벌기업과 거래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성진테크윈이지만 그는 자신의 직원들이 느끼는 작은 보람을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이 대표는 CEO의 상징인 구두가 아닌 영업직원의 생명인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전우용 기자

◆성진테크윈은(switch-vr.com)
대전 동구 인동에 있는 성진테크윈은 스위치와 센서부품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전투기 F35의 조종간을 납품하고 있다. 민수사업 분야에서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현대와 기아, 도요타 등에 블루투스 모듈을 공급 중이다. 지난 2013년엔 중소기업은 취득하기 힘든 ‘AS 9100 인증’을 받았다. AS9100은 국제적으로 일관된 표준을 제공하고 항공우주 분야에 필요한 안전 및 신뢰성과 관련된 항공우주 분야의 요구사항을 ISO 9100 품질경영시스템 모델에 접목한 국제표준이다. 지난해 9월엔 대전시의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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