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시장 석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전도유망하다는 평가는 비교우위, 즉 성공 가능성을 의미한다. 열정과 뚝심을 양분 삼는 나무는 떡잎부터 다른 법이다. 대전시가 매년 지정·관리하는 유망중소기업이 그렇다. 굴곡과 역경을 딛고 내일의 블루칩을 꿈꾸는 대전 유망중소기업. 그들의 현재 진행형 성장기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훌륭한 교과서이자 잘 사는 도시 대전의 씨알 굵은 동력이다. ‘2015년 선정 대전 유망중소기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정태희 (주)삼진정밀 대표
#19. 삼진정밀
꿈이란 게 정말 이상하다. 삶을 지탱하는 활력소가 되는가 하면 삶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간절하면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 등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꿈 앞에서 좌절을 맛봤을 때 대다수는 모든 의욕을 잃게 하는 역기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은 꿈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의 역할이 더 크다는 게 이유다. 정태희(59) ㈜삼진정밀 대표도 꿈을 가지라고 청춘에게 말한다. 비록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히 시간 가는 대로 살았던 꿈이 없던 시절
정 대표의 첫 직업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강사였다. 과목은 마케팅 관련 쪽으로 급여는 시간당 2만~3만 원 정도였다. 지금 최저 시급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금액이지만 시간강사라는 처우가 예나 지금이나 좋지 않아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그는 불안했다. 고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정 대표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장남이었던 정 대표는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주말마다 본가를 오갔고 자신의 급여로는 어머니의 치료비는 물론 교통비까지 감당하기 힘들었다. 강의를 하다가도 문뜩 ‘어머니가 쓰러지셨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시간강사로 머물고 말 것인가’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정 대표는 어머니 간호를 위해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하던 사업은 빨간 고무 대야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빨간 고무 대야를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엔 가정마다 크기별로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도로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고무 대야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온몸에서 고무 냄새가 진동했고 피부는 검게 그을린 자국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거지꼴이었다.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신경안정제가 있어야 잠을 잘 정도로 그의 심신은 지쳐갔다. 그때 또 ‘내 인생 어디로 흘러들어가나’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꿈이 그의 깊은 마음속에서 태동했다.

◆삼진정밀로 꿈을 시작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정 대표는 1991년 삼진정밀을 설립했다. 중동을 다녀와 밸브에 대한 실무 사업에 빠삭했던 지인의 권유로 밸브를 다뤘다. 지인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거래처를 늘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시간강사 시절 마케팅을 가르쳤기 때문에 이론엔 자신 있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차였던 르망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제품을 홍보했다. 차에 항상 밸브 등 제품을 싣고 다니니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추기도 했다. 몸이 힘들어 집에 돌아오면 기절하듯 쓰러졌다. 매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니만큼 항상 즐거웠다. ‘재능을 타고난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자 그의 사업은 점차 세를 불려나갔다. 거래처도 하나둘 늘어갔고 1500만 원을 투자해 첫해 4000만 원의 수익을 냈다. 사업이 점차 커지면서 대전시도 삼진정밀의 제품을 눈여겨봤다. 당시 대전에선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는 향토기업인 삼진정밀의 제품을 쓰고 싶어 했다. 정 대표는 삼진정밀의 제품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당시 엑스포의 중앙통제실에 밸브를 납품했다. 하지만 엑스포 개최 일주일 전 일이 터지고 말았다. 메인으로 쓰이던 50㎜ 밸브가 작동하지 않은 것. 밸브가 작동하지 않으니 중앙통제실엔 물이 새기 시작했고 메인 밸브를 고치기 위해 물이 새는 곳을 직접 몸으로 막았다. 10분, 20분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한 시간을 넘기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중앙통제실이 물에 잠기면 엑스포 개최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단 사실에 손에 닿는 건 모두 동원해 물을 막았고 결국 두 시간이 지나서야 메인밸브가 잠겼다.

“세계적인 행사에 삼진정밀의 제품을 납품할 수 있게 돼 기뻤죠. 엑스포가 개최되기 전 제품을 시운전했는데 갑자기 메인 밸브가 작동을 안 하는 거 에요. 중앙통제실에 물이 새기 시작했는데 물이 들어오면 안 되니까 죽을 각오로 온몸으로 물을 막았습니다. 다행히 메인 밸브를 고치긴 했지만 사업에서의 첫 좌절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제품의 품질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죠. 마케팅만큼 제품개발에 노력하게 됐습니다.”

◆순탄치 못했던 첫 해외진출
제품개발에 매진한 결과 삼진정밀의 수익은 억대를 돌파했다. 수익은 모두 R&D에 재투자했고 2000년엔 1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자연스럽게 눈을 해외로 돌렸고 목표는 동남아로 잡았다. 그 당시 시에선 중소기업들의 해외 판로를 확대하기 위한 동남아 파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시와 함께 싱가포르로 향한 정 대표는 한국에서 삼진정밀이 먹힌 만큼 동남아에서도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귀국을 하루 앞둔 날 ‘이대로 돌아가면 억울하다’란 생각에 숙소에 놓인 전화번호부책을 들고 삼진정밀의 제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기업들을 뒤져 일일이 모두 전화했다. 얼추 100통 정도는 했지만 대부분은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두세 곳이 정 대표의 제품에 관심을 가졌고 급하게 만남을 추진한 결과 어렵사리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거래를 계기로 싱가포르는 물론 동남아 다른 국가와도 거래를 늘리기 시작했고 정 대표는 좀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동남아에 진출한 이상 이젠 더 넓은 세계로 가보자며 중동 진출을 계획한 것. 중동엔 원유를 추출하기 위한 시추장비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밸브 수요는 충분하단 생각에 80억 원을 투자하고 직원들과 중동으로 향했다. 하지만 중동에선 삼진정밀의 규격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중동의 규격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허가를 받는 데에만 꼬박 3년이나 걸렸다. 이 기간 수익을 낼 수 없으니 투자한 돈은 모두 까먹었다고. 하지만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이미 견고한 카르텔 비슷한 게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삼진정밀의 제품을 납품하기 힘들었다. 자신의 힘으로 동남아 시장까지 뚫었던 정 대표는 직접 발로 뛰며 삼진정밀의 제품을 홍보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제품을 써보라고 권유했고 삼진정밀의 제품을 써본 기업들은 흡족해 했다. 삼진정밀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매출은 2013년 170억 원을 달성했다. 이듬해엔 220억 원, 다음 해엔 25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삼진정밀은 성공적으로 중동에 자리 잡았다.

◆친환경 기업을 목표로 꿈을 설정하다
삼진정밀은 대전은 물론 한국, 세계에서도 인정받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삼진정밀을 이끈 정 대표의 꿈은 이젠 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에만 치우쳐 환경을 등한시 했지만 정 대표는 이제 삼진정밀을 친환경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키우려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또 다른 꿈이 생긴 것이다. 특히 그가 생각하고 있는 분야는 장비와 공정이 시스템이 되는 수처리 엔지니어링 회사를 만드는 것. 수처리 분야는 하나하나의 제품들이 모여 큰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는데 정 대표 역시 친환경적인 제품들로 구성된 수처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물론 쉽지 않다. 아직 수처리 기업은 큰 수익을 내기 힘들고 국내엔 벤치마킹할 수 있는 마땅한 수익모델도 없다. 즉 삼진정밀이 새로운 길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말엔 확신이 차 있다.

“수처리 분야에 친환경 엔지니어링과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이제 기업은 무조건적인 성장만을 이루면 안 되는 시대입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길은 보이겠죠. 이렇게 꿈을 갖는다면 자연스레 열정도 생깁니다. 단순히 대기업을 입사한다는 꿈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가진다면 아무리 힘든 일 앞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정 대표 앞에 역경은 또 한 번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버티고 있는 삼진정밀은 역경 앞에 무릎은 꿇을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에겐 꿈이 있어서다.

글=김현호 기자·사진=전우용 기자

 

삼진정밀(www.samjinvalve.com)은

삼진정밀은 상하수도 밸브를 다루는 기업으로 현재는 수자원 관리시스템과 정수·하수 ·물 재이용 시스템 등을 개발 중이다. 또 플라스틱 제품 및 배관 액세서리와 오일-가스 및 석유화학용 밸브도 생산하고 있다. 지난 2013년엔 ‘취업하고 싶은 기업’에 선정됐고 이듬해엔 ‘일하기 좋은 으뜸기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중소기업인 유공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인증으론 ‘API 6D’와 ‘감압밸브 부품·소재 신뢰성’, ‘웨이퍼타입 버터플라이밸브 K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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