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를 멸하다⑨

왕전이 한단을 포위하여 공략하는 동안 진왕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단이 함락되자 직접 그곳 군영에 들어가 왕전 장군의 전공을 치하하고 군사들을 격려했다. 진왕이 직접 전장에 나와 자신들을 격려해준 것에 대해 병사들은 감사하며 사기를 더 높였다.

얼마 후 조나라 왕 천이 포로로 진왕 앞에 끌려왔다.

그는 진왕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줄 것을 간청했다. 비굴할 만큼 초라한 모습이었다.

“내 어린 시절 조나라 땅 한단에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조왕 천은 아는가?”

진왕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 어찌 알겠소?”

조왕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암 알 턱이 없지. 그때의 고초를 생각하면 지금당장 조왕의 목을 베도 시원치 않을 것이오.”

진왕은 분노의 눈초리로 조왕을 굽어본 다음 장수 왕전에게 명했다.

“과인은 어린 시절 혹독한 굴욕을 참아내야 했던 일들이 많았소. 그토록 질긴 굴욕을 감당케 했던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매장 형에 처하시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마음껏 회포를 풀라 이르시오.”

잔인한 명령이었다.

장수 왕전은 곧바로 명을 전하고 진왕이 어린 시절을 보낼 때 그를 어떤 형태로든 괴롭혔던 자들을 잡아들여 생매장 시키라고 일렀다.

쑥대밭이 된 한단에 또 한차례 후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진나라 병사들은 왕명에 따라 온 도시를 뒤져 조나라 중신들이 생포되는 대로 생매장시켰다. 진왕 즉위 19년이 되던 해였다.

병사들은 그것을 빌미로 성내를 돌며 닥치는 대로 아녀자를 겁탈했다. 곳곳에서 여자들의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어떤 병사들은 떼 지어 다니며 그 짓을 했다.

얼굴이 반반한 아녀자라고 보이면 병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겁탈을 했다. 두 병사는 팔과 다리를 잡고 다른 병사가 몸을 걸터타는 방식으로 돌아가며 침탈했다. 심지어 중년이 훨씬 지난 부인네나 어린아이도 병사들의 눈에 띄었다면 온전치 못했다. 이를 만류하는 사내들은 어김없이 베임을 당했다.

한단성이 온통 피바다로 물들었고 아녀자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한단성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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