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의 암살기도와 연의 멸망①

“연나라를?”

“그러하옵나이다. 연나라는 본시 조나라와 인접하고 있어 왕전 장군이 벌써 그들의 코밑에 가 있나이다. 이 여세를 몰아 연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위나라를 거두심이 가할 줄 아뢰옵나이다.”

“그도 좋은 생각이오.”

진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중신들의 생각은 달랐다. 먼저 위나라를 치고 숨을 돌린 다음 연나라를 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논의는 며칠 계속됐다. 진왕은 왕전이 아직 조나라를 완전히 평정치 못하였으니 그 일이 끝난 뒤 다시 논하기로 하고 회의를 중지시켰다. 다만 연나라 공략문제가 거론된 만큼 그를 위한 방안을 연구토록 군부에 하명하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동안 연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위나라와 조나라를 거쳐야 했으므로 단 한 차례도 국경을 맞대고 싸울 일이 없었다. 진의 원교근공의 책략에 따라 연나라는 친교관계를 유지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조나라를 멸망시킨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졸지에 국경을 맞대게 됨으로써 직접적인 공략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조나라를 침공한 왕전은 병사들의 사기가 드높음을 간파하고 연나라의 역수까지 밀고 들어가 연나라를 위협했다.

진의 위협이 나날이 거세게 다가오자 연나라 태자 단(丹)은 궁여지책으로 진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찍이 태자 단은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난 영정과 함께 어울려 놀던 사이였다. 같은 처지에 있었으므로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를 깨물었다. 그 때문에 사이가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훗날 영정이 진나라로 돌아와 왕이 되었을 때 태자 단은 진나라의 볼모가 되어 함양에 머물렀다. 그때의 일이었다.

단은 며칠간의 고심 끝에 진왕 영정 앞에 나아갔다.

“대왕마마. 저를 고국 연으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저와 대왕마마는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죽마고우가 아니오니까. 옛정을 생각하시어 저를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간청하나이다.”

하지만 진왕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기다려 보아라. 까마귀 머리가 희게 되고 말머리에 뿔이 날 때쯤이면 너를 돌려보내주마.”

태자 단은 진왕의 말에 격분했다. 그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탈출을 기도했다. 그러다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결국 연으로 도망쳐 달아났다.

이때부터 단은 언제라도 기회만 있으면 진왕을 암살하여 그날의 치욕을 씻기로 마음먹었다. 태자 단이 암살을 위해 진나라로 보낼 사람을 찾다 장수 형가가 최적의 인물이라 판단했다. 단은 그를 태자궁으로 불러 후하게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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