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부도딛고 인생반전 성공

고석신(왼쪽)·김경한 대한특허개발㈜ 대표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의기투합해 성공의 결과물을 빚어낸 기업인들이 있다. 긴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기업의 가치를 높여간 대한특허개발㈜의 고석신, 김경한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IMF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태풍 속에서 역경을 극복하며 대한특허개발㈜을 가치 있는 유망중소기업으로 키워냈다.

◆IMF의 폭풍우 속에서 맞이한 부도… 실패 딛고 ‘신뢰’로 항해하다
대한특허개발㈜을 이끄는 고석신·김경한 대표이사, 두 사람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들은 한 회사에서 일한 인연으로 전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했던 고(故) 김창성 대표까지,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3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러나 이들 앞에 거대한 폭퐁우가 몰아쳤다. 대한민국을 휩쓴 IMF 사태로 인해 정성스레 키워갔던 회사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어떻게든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국가경제 위기 앞에서 이들이 운영하던 회사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결국 회사는 부도를 맞았고 꿈은 산산조각났다.

고 사장은 당시의 쓰라린 기억을 회고한다. “IMF 시기에 운영하던 전자회사가 파산했습니다. 경제위기 사태가 나자 출고된 상품 출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죠. 자재는 쌓여가고 제품이 팔리지는 않는 악조건에서 남은 몇몇 직원들과 박스 하나 들고 납품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죠. 그나마 이전에 직원들 앞으로 보험을 들어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고 우울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경제 위기, 회사의 부도, 흩어져 버린 직원, ‘포기’라는 말이 입 밖까지 차오르던 그 순간에도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결국 ‘다시 해보자’는 각오로 가정집 3층에 터를 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대한특허개발㈜은 이렇게 탄생했다.

김 대표는 “IMF로 회사가 부도를 맞았던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던 것은 따로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하다 보면 어려운 터널이 지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서로를 믿다. 믿음의 시너지는 회사를 키워갔다
대한특허개발㈜은 설립 초기 자동차 경보기 제품을 생산했다. 제품은 유럽시장까지 진출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후 전장산업·안테나산업·무선충전코일라인을 주요 사업영역으로 탈바꿈했다. 획기적인 변화와 도전은 성공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설립 초기 대한특허개발㈜의 매출액은 미미했지만 지난해 40억 원 이상을 기록했다.

대한특허개발㈜의 성공 과정에서 대표 3명의 시너지는 빛을 발했다.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려운 일을 실천해 나갔다. 고 대표는 “조그만 문제도 이야기하고 자주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다른 사람 생각은 어떤지에 대해 의향을 묻고 생각의 차이가 컸을 때는 조금씩, 조금씩 맞춰나갔습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경영상 문제나 큰 일이 있을 경우에는 상의해서 해법을 찾죠”라고 비결을 말한다.

이들은 서로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김 대표는 “고 대표 정말 끈기있습니다. 전체적인 관리 문제가 안 풀릴 때 물고 늘어져 결국 해결하고 마는 성격이죠. 회사직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회사에 침낭을 갖다 놓고서라도 문제해결을 하곤 합니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고 대표는 “김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고 다방면에 있어 지식이 풍부합니다. 저와 김 대표는 회사에 필요한 것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어려움 없이 지내온 것 같습니다”고 화답했다.

이들은 고(故) 김창성 대표에 대한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김 대표는 나이는 어렸지만 대외적인 업무를 맡았습니다. 영업파트를 담당했는데 친화력 있고 고객들을 대하는 능력이 좋았습니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IMF 직격탄을 맞은 이들의 시작은 미약했다. “처음 일을 시작해 납품할 때는 수량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름값이 아깝다는 생각에 납품용 박스를 들고 버스로 물건을 납품하곤 했어요. 힘들어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계속해서 주문이 올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주문 수량이 20만 개나 되니 격세지감입니다.”김 대표가 환하게 웃었다.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지난 2012년 연말 교통사고로 동지였던 김창성 대표이사가 운명했던 일이 그랬다. 남은 두 대표이사에게 당시의 사고는 여전히 가슴 먹먹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대전시, 자금 지원 제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여건 마련해 줬으면
3명이 일군 기업은 이제 63명의 직원을 둔 대전 유망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저희들이 봤을 때는 직원들은 또 다른 고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고객 모시듯 하고 있습니다”라며 직원 관리의 가치관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회사 설립 초기에는 열악한 복지 탓에 직원들의 이탈도 적잖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를 변화시킨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인간적인 관계’였다. 3명이 합심해 다시 일어선 그 순간의 초심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인력이 자주 바뀌곤 했습니다. 조그만 기업이다 보니 복지와 급여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저희들이 최대한 믿음을 주고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해 갔고 기술을 키워나가 ‘사람’이 머물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인력의 변동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나온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읽히는 대목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바탕으로 청춘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김 대표는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주인의식을 갖고,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만들어놓은 범위의 테두리를 쳐놓은 것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고 테두리를 깨 자기 업무능력 범위를 넓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고 했고, 고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적극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극성만 갖고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대전 유망중소기업 대한특허개발㈜ 대표들이 대전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고 했다. 고 대표는 “저희는 경제통상진흥원을 통해 대전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자금 활용을 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지원 기간을 많이 줘서 회사에서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대했다. 김 대표는 “대전시에 특별히 요구할 사항은 없습니다. 기술지원, 자금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원 신청을 할 때 일부 자격요건의 문턱을 조금 낮춰주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바랐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우뚝 선 대한특허개발㈜의 오늘에 박수를 보낸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사진=전우용 기자

대한특허개발㈜의 TRANSMITTER(BCM과 연동해 원격으로 차량을 제어하는 장치)
대한특허개발㈜ http://www.dhpd.co.kr/html/main.php

대한특허개발㈜은 지난 1998년 4월 설립해 신제품개발 및 안정된 품질, 생산성 향상, 원가절감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기업이다. 설립 후 전장사업, 안테나사업, 무선충전코일라인 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전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인화, 근면, 내실의 경영방침아래 임직원 간의 결속을 구름판 삼아 지속적인 부품개발 및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