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태후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젊은 환관을 불러들여 정을 통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것을 목격한 이상 용서할 수 없었다. 선왕의 사랑이 부족했고 그래서 늘 혼자 궁을 지켜 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종종 태후궁을 찾아 문안을 여쭙곤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승상 여불위와 함께 국정을 농단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거둥을 멈추었다. 도리어 그것이 분노가 되어 가슴속에 하나 둘 쌓이고 있었다. 고초를 이기지 못한 노애는 결국 모든 것을 진왕에게 털어놓았다.자초지종은 이러했다.중부인 여불위가 벌써 오래 전부터 태후와 정을 통해 왔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불위는 진왕이 성장하면서 태후와 정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여 그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진왕을 쥐도 새로 모르게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왕을 없애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차일피일 미루며 속을 주렸다. 더욱이 태후가 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으므로 단번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여불위와 태후가 참으로 진하게 놀이판을 벌이고 난 뒤였다."중부께서 태후궁을 찾아 주시지 않으면 내 무슨 재미로 살겠소. 구중궁궐에 앉아 하늘만 쳐다 보기에는 아직 피가 너무 뜨겁답니다."태후가 나른한 표정으로 흐트러진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태후마마. 신이 이곳을 드나들며 지정을 나눈 지도 벌써 수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성숙하시니 날이 갈수록 두려움이 앞섭니다."여불위 역시 옷을 주워 입고 앞가슴을 여미며 말했다."누가 알겠소. 중부께서 태후궁에 일이 있어 오신 줄로만 알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랫것들에게도 입조심을 단단히 시켜 두었으니까요."태후는 동경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며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졌다."오늘 태후마마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니 지난날이 생각납니다.""지난날이라니요?""선왕과 태후께서 처음 만나시던 날 말입니다."여불위가 대답했다.선왕 자초가 태후 조희를 처음 만난 것은 여불위의 집에서였다. 조나라 수도 한단에 자초가 볼모로 잡혀 있었고 여불위가 화양 부인에게 후계자로 삼아 줄 것을 당부하기 직전이었다.여불위는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자초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융숭하게 대접했다. 여불위는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에 자신의 애첩 조희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자초는 조희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여불위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곁눈질로 조희를 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