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 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로 가고 있는 길일세. 지금 나라 안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가. 60만 대군이면 궁성을 지키는 병사들과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병사들이 나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 그렇사옵니다만.”

“임금이 생각할 때 아무리 믿는 장수라 할지라도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초나라에 가서 나라를 세울 수도 있고 혹은 회군을 하여 왕권을 탐할 수도 있다고 말일세. 그런 가운데 조악한 무리들이 간계를 부려 내가 흑심을 품고 있다고 간한다면 나는 어찌 되며 이번 전쟁은 또 어찌 되겠는가?”

왕전은 멀리 산야를 넘어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의도적으로 전답을 달라고 간청한 것일세. 그래야 임금이 내가 그 전답을 탐하여 꼭 승리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질 않겠나.”

그제야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왕전의 깊은 뜻에 고개를 조아렸다.

왕전은 초나라를 침공해 들어가면서도 서둘지 않았다.

도리어 몇 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들어가 느긋하게 때를 기다렸다.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사기를 돋우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왕전은 군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들과 동고동락했다.

이와는 상반되게 초나라는 장수 항연을 보내 왕전을 대적도록 했다. 이신 장군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그것을 거뜬히 물리친 초나라였으므로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당장이라도 왕전을 내몰 기세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초나라 땅에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 왕전을 향해 공격을 거듭했다.

그러나 왕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초나라의 상승기류를 한 풀 꺾고 대적하자는 전략이었다.

어느 쪽이 침공을 한 것이고 또 어느 쪽이 수성을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항연은 남의 나라에 들어와 수성을 하고 있는 왕전의 전략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항연이 왕전을 포위하여 여러 날을 공격했지만 방어만 할뿐 더 이상의 전력을 내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싸움을 걸어 보았지만 곰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싸움이란 기세가 올랐을 때 쳐부수어야 전과가 있는 법. 일방적으로 공격만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극적으로 수성만 할 때 싸움은 싱거워지고 맥이 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초나라 병사들은 전투가 장기전으로 돌입하면서 갈수록 사기가 떨어졌다. 싸워도 싸워도 대적을 하지 않으니 전장에 나온 보람이 없었다. 혼자 달밤에 체조를 하는 격이었다.

공격에 지친 항연은 결국 포위망을 풀고 군을 이동시켜 새로운 전술을 시도할 욕심이었다. 그는 가장 약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왕전을 무찌를 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