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규 제천시장(더불어민주당)이 요즘 물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친다.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동분서주다.

지난 9일 제천시민회관 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이 시장은 이날 마이크까지 잡고 “80년 서울의 봄이라는 군사독재 정권과 맞서 싸운 선배 동지들의 투쟁의 역사를 되새긴다”며 민주화운동을 운운했다.

그가 이날 시민들에게 보여진 이미지는 마치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투사로 비쳐졌다.

또 지난 12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이 시장은 김구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고 있다. 애국심 또한 남다른 듯하다.

현 정치권이 야당으로 무게가 쏠리는 탓인지, 이 시장의 목에 힘이 들어간 듯싶다.

하지만, 최근 이 시장의‘정체성’ 없는 이력들이 나와 당혹스럽다.

이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 새천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 2008년 제18대 총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예비후보, 2012년 19대 총선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앙선거대책위 청소년대책위원장’과 ‘중앙유세단 충북유세단장’을 맡았다.

심지어 일부 언론사에서는 “이근규(당시 청소년운동연합 총재)는 한나라당 경선때부터 이명박 후보를 도운 충북내 대표적 친이명박계 인사”라고 소개까지 됐다.

‘국회의원 삼수생’이란 오명을 안고, 이당 저당을 오가며 ‘철새정치’를 이어온 셈이다.

‘민주투사’와 거리가 먼 행보는 대학시절에 나왔다.

그는 고려대 학도호국단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고 말한다.

호국단은 정부 주도로 학생을 통제하기 위한 관제 학생조직이다.

단장을 뽑을 때는 각과별 학년대표가 투표를 한 후 선출한다.

호국단장이 원하면, 교직에 우선 배정되는 특혜도 주어진다.

이후 1985년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학생 전원이 선출해 뽑는 방식인 총학생회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학도호국단장과 총학생회장의 의미는 완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고 고수하는 충분한 이유는 되는 것 같다.

당시는 수도권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시기였다.

고려대 또한 정부의 대규모 징계를 예상하고 학생들 모두가 서명 운동을 전개하려 했다.

고려대 민주동우회가 카페에 올린 1982년 3월 24일 시위 녹취록를 보면, 이 시장의 또다른 모습이 나온다.

영화‘밀정’을 연상케 할 정도다.

이 시장의 선배인 주 모(고려대 79학번) 씨의 증언 중 한 부분이다.

서명운동을 학도호국단(단장 이근규)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이 단장을 만나러 다방에 갔는데 형사들이 미행해 이 단장을 연행해 갔다. 형사들은 그 후 다른 후배들을 비롯해 호국단 임원들까지 연행해 조사를 했다.

알고 보니 이 단장이 형사들에게 나를 만났다는 얘기도 하고 자술서까지 다 썼다. 결국 성북경찰서에서 우리집을 찾아왔다. 추후 조사를 받았을 때 성북서 정보형사 이 모 씨가 “이근규가 다 얘기했다. 사실대로 얘기하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단순히 이 글만 본다면, 이 시장은 대학시절 데모를 한 동료들을 밀고한 ‘밀정’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시장은 지난날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서 백만 학도를 이끌었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고 말했다.

시민들 또한 이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한 고대 동문들의 모임인 ‘고대민주동우회’에서는 그의 이력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에는 심재철, 유시민을 비롯해 고려대 선·후배인 신계륜(총학생회장), 김영춘(총학생회장), 허인회(총학생회장), 이인영(총학생회장) 등이 선봉에 서서 학생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장에게 묻고싶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젊음을 바친’이들이 과연 이근규 제천시장을 민주투사로 여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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