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위는 그 길로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불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진나라 전역에 전해지자 그를 따랐던 많은 문객들이 문상하며 조의를 표했다. 여불위의 집에는 연일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호상은 여불위를 가장 지근에서 모셨던 심복 이사가 맡았다. 그는 상주를 대신하여 조문객을 맞았다. 하지만 조문객은 끊이지 않았다. 몇날 며칠을 선 채로 맞았지만 줄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한편 여불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한 진왕은 못내 우울했다.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의 생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 또 그렇게 하도록 사주한 것이 자신이 아니었던가. 진왕은 오랜만에 내관 조고에게 주안상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술을 마시지 않고 고통을 참아내는 것은 더없는 고역이었다.침전에 주안상이 들어가자 조고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대왕마마, 어찌 홀로 술을 드시오니까? 술 따를 이가 있어야 하질 않겠나이까?" 진왕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자작하여 기울였다.말이 없다는 것은 그렇다는 뜻이었다. 조고는 급히 내궁에 전갈을 보내 미모가 빼어나고 말재주가 비상하다고 알려진 궁녀를 불러들였다."너는 오늘 대왕마마를 특별히 잘 모셔야 하느니라. 심기가 몹시 불편하시오니 그 점을 유념하여라. 자칫 대왕마마의 심기를 더욱 어지럽힌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라. 알겠느냐."조고는 자신의 앞에선 궁녀에게 단단히 일렀다.궁녀는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그러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녀는 연화라는 궁녀였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눈빛이 강렬하여 사내들이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자지러질 정도로 색기가 흘러 넘쳤다.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종아리, 몸에 비해 넉넉한 가슴은 내관들조차 침을 흘리기 일쑤였다. 더욱이 그녀의 말솜씨는 당할 이들이 없었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목소리와 감칠맛 나는 말투는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내관들은 심심하면 그녀와 말장난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자신들이 사내 구실을 할 수 없어 넘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그녀를 흠모하곤 했다. 연화는 조용히 침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사뿐히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하지만 진왕은 스스로 따른 술잔을 기울이는 것 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소녀 연화라 하옵나이다. 성은을 입어 오늘에야 대왕마마를 모시게 되었사오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진왕은 반응이 없었다."소녀 다시 아뢰옵나이다. 미천한 몸으로 하해와 같은 성은을 입어 대왕마마를 모시려 했으나 물리치시니 용안을 본 것만으로도 모신 것과 진배가 없사옵나이다. 다시 한 번 성은에 감사하며 만수무강을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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