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김장은 우리 사회에서 겨울을 나기 위한 중요한 행사이자 준비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장풍습이 예전과는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젊은 주부들은 힘들여 김장을 담그기보다는 마트나 김치공장에서 대량으로 가공된 김치를 사 먹는 경우도 많이 있고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김장철에만 김장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또한 가족 구조가 바뀌고 대부분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따로 김장을 담글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웃이나 친척들이 함께 치르는 행사가 아니라 시골에 계신 부모들이 도시에 사는 자녀들의 김장을 대신 해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골의 부모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벧엘의집도 우리 세대의 부모들처럼 지난해부터 쪽방주민들에게 나눠줄 김장담그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벧엘의집이 쪽방주민을 위한 김장 나눔 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소박했다. 쪽방주민들은 따로 김장을 할 수 없기에 자원봉사단체 등에서 후원해 주는 김장으로 겨울을 나야 하지만 봉사단체나 후원단체에서 지원해주는 김장이 워낙 적다 보니 골고루 나눠지지도 않고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벧엘의집이 직접 김장을 해서 쪽방주민 전체에게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눠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지난해부터 울안공동체 식구 중 몇 사람이 자활프로그램으로 벧엘농장에서 농부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을에는 김장배추와 무 등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을 농사지어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처음으로 쪽방주민들에게 몇 포기씩이라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약 2000포기가 넘는 김장담그기 행사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고 양념을 준비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아 양념을 김치공장에서 가공된 것을 구입해서 했었다. 다행히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올해는 용기를 내 김치양도 지난해보다 늘리고 양념도 직접 장만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울안공동체 영양사의 도움을 받아 양념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고춧가루며, 새우젓이며, 양파 등 원재료들을 장만해서 준비했다. 다행히 이번 김장담그기 행사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전충청지역본부 봉사단이 후원금과 지난해에 이어 참여하기로 했고, 대전중부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건강보험 동부지사와 일부 교회에서는 김장행사를 위해 일정액의 후원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김장행사에 참여할 자원봉사자들과 경비를 마련하고는 일정을 잡아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김장김치를 종이상자에 담아 나눠 주다 보니 간혹 비닐이 터지기도 하고 주민들이 보관하기가 어렵다는 민원이 있어 평소 모다 두었던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5.5㎏짜리 김치통 600개도 장만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2016, 손맛 나눔! 김장 나눔! 이란 제목으로 김장담그기 행사를 진행했다. 꼬박 이틀 동안 자원봉사자들과 울안식구들, 그리고 일꾼들이 매달려 600통의 김장을 한 것이다.

어렵게 김장 행사를 하고 쪽방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래도 한 통씩은 돌아가도록 준비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매번 후원물품을 나눠주거나 행사를 하면 뒷말이 많기 때문이다. 주려면 한겨울을 날 수 있게 좀 넉넉하게 주지 생색만 내느냐고 하는 이도 있고, 누구는 다른 곳에서 받았는데 또 주느냐고 하는 이도 있고, 김장을 위해서 많은 후원을 받았을 텐데 이게 전부냐고 하는 이도 있다. 심지어 누구는 쪽방상담소에 등록되지도 않았는데 주느냐며 항의하는 이도 있다. 이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면 한편으로는 참 오지랖도 넓지 일을 또 만들어 싫은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눈감고 외면하면 그만인데 좋은 소리도 못 들어가면서 왜 또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상황은 예견되었었다. 그래서 김장행사를 시작하면서 참여한 봉사자들에게도 우리가 이렇게 많은 양의 김장을 하지만 정작 쪽방주민들은 그것을 몰라줄 것이라고 말했다.

죽도록 일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곳, 바로 그곳이 쪽방상담소가 아닐까? 어쩌면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불만, 세상에 대한 불만을 맘 놓고 털어 놓을 곳이 없으니 만만한게 벧엘의집이라고 조금이라도 서운함이 생기면 싸잡아 쏟아내는 것일 게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소리를 해도 언젠가는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열어갈 수 있는 주체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내년에도 김장을 해야겠지.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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