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현 대전시의원

지난 연말, 필자는 아내와 함께 두 편의 영화를 봤다. 그중 하나가 ‘판도라’. 최근 지진 위험에 노출된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 폭발이 가져올 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지진이라는 천재(天災) 앞에 다가올 원자력발전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이를 통제하고 안전을 책임질 국가시스템이 붕괴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재(人災)를 우려하는 측면이 더 절절히 다가왔던 소감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노후 원전을 재가동하는 정책 결정이나, 비전문가의 낙하산 인사가 원전의 책임자로 앉아 전문가를 배척하는 정부의 인사시스템,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는 무책임한 중간관리자, 주요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거나 재앙을 은폐·축소·왜곡하는 내각,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체육관에 내버려두고 먼저 탈출하는 경찰과 지도자들….

세월호 참사 당시 선장과 정부의 부실 대응,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드러난 국가 공적 시스템 붕괴,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현 정국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것과 닮아도 한참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적이고 영웅적인 노력으로 최악의 재앙만은 막게 되는데, 재앙과도 같은 현 국정시스템 붕괴 속에서도 1000만의 촛불을 밝힌 시민들 역시 판도라 상자에 유일하게 남았던 희망이 아니겠는가…. 마치 오랫동안 녹조·적조가 쌓인 강과 바다를 정화시킬 홍수와 태풍, 파도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 같은 유일한 희망처럼….

필자는 지방의 한 정치인이지만 지난해 두 번의 민심의 쓰나미를 목격하고 전율이 일었다. 야당의 분열로 인한 여당이 휩쓸 의석 수를 180석, 200석을 예견했으나 자로 잰 듯하게 정치권을 심판했던 4·13 총선, 그리고 비선실세들에 의해 농락당했던 청와대 등 국정에 대해 대통령 탄핵으로 심판한 촛불이 거대한 민심의 쓰나미였다.

이 쓰나미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이 쓰나미를 당리당략에 이용하거나, 권력 장악을 위해 반칙과 독점으로 판을 망가뜨리는 정치권을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이 두 번의 쓰나미는 오래된 적폐를 청산하고 이제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새해 희망을 말하는 시민들의 하나하나는 소박하지만 이를 모으면 쓰나미일 것이다. 1% 기득권들이 국부를 독점하고, 이를 대물림하는 국가시스템. 이를 개혁하라는 주문일 게다. 특권과 반칙, 갑질과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일 것이다.

자녀 1인당 대학 졸업 때까지 양육비가 3억 원이 넘는 사회, 세계 최장 시간을 공부하고도 졸업 후 일자리가 없는 사회, 청년들에게 공무원이 꿈이고 건물주가 꿈이 되어버린 사회, 희망을 얘기하기 민망한 사회, 바로 우리 청년들이 맞닥뜨린 대한민국의 모순 중 모순일 게다. 이 사회를 바꿔달라는 주문, 바로 현재 진행형인 민심의 쓰나미가 요구하는 주문이다.

2017년과 2018년은 민선 6기의 하반기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해이다. 또 국민 주권을 표출하는 두 개의 중요한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다시 한 번 민심의 쓰나미가 관통하게 될 올해, 중앙과 지방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치열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 민심의 쓰나미가 요구하는 사항을 받아 안아야 한다.

필자는 지난해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연말에는 대전시의회 내 청년발전특위를 구성했다. 권선택 대전시장도 신년사에서 청년에 대한 투자를 역설했다. 구호로 그치거나 생색을 내는 수준으로는 곤란하다. 가용한 재원을 모아 투자를 계획해야 한다.

촛불의 민심을 이끌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희망을 준다면, 그것은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청년들에게 다시 용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획기적인 투자일 게다. 그래야 판도라 상자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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