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의회 이대현 의원

부여읍과 관내 여기저기 나뒹굴며 흩어져 있는 백제시대 ‘초석(礎石)’들이 모아지고 있다.

부여군의회 이대현 의원(사진·새누리당)은 부여에서 나고 자란 70여 년 동안 백제시대의 소중한 사료(史料)와 유물이 될 수 있는 ‘초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수 년 전부터 초석 모으기에 앞장서고 있다.

눈이 내린 지난 14일 이 의원은 부여교육지원청에 관상용 석재로 화단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초석을 수차례 교육지원청 관계자들을 설득 후 한 곳에 모으는데 성공했다.

◆ 초석 모으기에 나선 이대현 의원

잃어버린 백제를 찾아 나선 이 의원은 백제가 멸망 후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고 훼손됐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왕궁과 유명사찰들은 화마에 휩싸이게 되고 보물급 유물들은 대부분 약탈당한 것으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남은 것이라고는 불에 타지 않은 당나라 소정방의 이름이 새겨진 국보 제9호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매장유물들이 전부다.

지난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는 매장문화재의 진가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이 의원은 “평생을 부여에서 살아오면서 부소산 남쪽 부여여고를 중심으로 쌍북리 쪽에 수많은 초석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봐왔고, 저명인사들을 중심으로 집에 가면 3~4개씩의 초석들이 정원석으로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해 늦었지만 내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으로 수년 전부터 초석 모으기를 해오고 있다”며 “목표는 300여 점을 잡고 현재 80여 점을 모았으며, 기관이나 개인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소장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동참을 당부했다.

◆ 수년 전부터 전개… 제자리 찾기 나서

이와 관련 여홍기 부여군 문화재사업소장은 “부여군의회에서 발 벗고 나서 이 같은 사업을 주도해 주심에 감사드린다”며 “군에서는 향후 백제시대의 석조물 일괄조사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초석 제자리 찾기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 소장은 “초석은 백제시대 궁궐, 관청, 절터에서 발견될 수 있는 유물로 향후 왕궁터 찾기 사업이 완료돼 왕궁터가 발견되면 백제 석조물 복원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초석 모의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초석은 대부분 원형초석이나 방형초석이며, 원주형초석이나 방주형초석은 정자·누 등에서 많이 사용됐다. 초석은 건물이 없어진 경우에도 남아 있는 초석의 배열, 초석 간의 거리 등으로 당시의 건물모양을 추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개별적 초석은 건물의 규모 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부여=김인수 기자 kis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