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 경감

지난주 금요일부터 내린 눈이 아파트단지 전체를 거대한 눈썰매장으로 만들었다. 하나둘 모여든 아이들은 쌓인 눈이 녹을세라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썰매를 타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 집세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침부터 동네 슈퍼에 가자고 조르더니 결국 플라스틱 눈썰매를 손에 넣고서야 투정부리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점심도 거른 채 하루 종일 눈밭을 누비고 다녔다.

눈썰매 타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지금보다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쌓이면 몇 안 되는 동네 아이들은 비료포대에 벼 집을 넣어 만든 눈썰매를 들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네 한가운데 있던 언 위 묘지로 모여들었다. 그런 다음 언덕 맨 위에부터 비료포대 눈썰매를 타고 묘를 지나 도로변까지 쏜살같이 내달리기를 반복했다. 언덕 위 묘지는 겨울철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눈썰매 자국으로 늘 반들반들했다. 사실 그때는 비료포대도 귀했다. 농작물 등 농사에 필요한 물건을 담아두거나 옮기는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런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만들어 타거나 여름에 아이스크림으로 바꿔 먹기도 하다 아버지께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도시와 먼 시골 오지에 살다 보니 지금처럼 눈썰매를 돈 주고 산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아이들 스스로 만든 놀이기구가 전부였다. 비료포대 눈썰매뿐 만아니라 대나무를 쪼개 스키처럼 만들어 타기도 했다. 또 논에 얼음이 얼면 철사를 이용해 직접 만든 썰매를 지치고 팽이를 치며 하루를 보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아이들과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이었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도 즐거웠는지 하루해가 짧기만 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집에 가기 전 불을 피워 젖은 옷가지를 말리는 일이었다. 모닥불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젖은 옷가지를 말리다 보면 양말도 태우고 솜이 들어간 바지도 태워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불에 그슬린 머리카락과 눈썹을 서로 가리키며 낄낄대던 일도 많았다. 한번은 논에 수북이 쌓아 놓은 벼 집 더미 옆에서 불을 피우다 벼 집 더미로 불이 옮겨 붙어 난리가 난적도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놀라 달려오고, 불을 끄려던 아이들도 엄청난 불길에 놀라 이리저리 도망가기 바빴다. 겨울 내내 소에게 여물을 끓여 줄 벼 집 더미를 다 태워버렸으니 회초리 맞은 것은 당연하고, 저녁밥 먹는 것도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지금도 창밖으로 간간히 눈발이 날린다. 아이들은 여전히 눈썰매를 타거나 눈싸움을 하며 떠들썩하다. 모처럼 내린 눈다운 눈이 전해준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은 아이들의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내 마음속 더 깊은 곳에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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