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지난 60여 년간 원자력 분야가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우수한 기초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이끌었고, 원전의 핵심인 원자로 설계기술 국산화, 핵연료 국산화,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 설치에 따른 다양한 방사선 이용 연구 활성화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이 견인차가 돼 현재 국내 30여 기의 원전이 건설, 운전,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핵기술은 방사능 오염과 이에 따른 안전 및 환경 문제에 봉착한다. 사실 국내 원자력계는 진흥에 집중한 나머지 안전이나 환경 분야에는 소홀히 한 감이 없지 않다. 도심 한복판에 존재하는 연구원 시설의 위치로 볼 때 연구라는 명목으로 안전에 소홀한 사실들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의원에 의해 작년에 1699개 사용후핵연료봉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원연)에 보관된 사실이 확인됐다. 그동안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밝혀진 것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해 어떤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관리가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민주당 유승희 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김용환 위원장이 합의한 3자 전문가 검증 약속도 지켜지지 않아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언론에 의해 ▲방사성폐기물 저장고의 드럼 적재로 내진 취약 ▲연구원의 방사성 물질 관리 미흡 ▲하나로 내진공사 부실 ▲사용후핵연료 운반용기 실험 미비에 따른 안전성 취약 ▲사용후핵연료 1699봉 이송 과정에서 도로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을 초과한 하중(40톤 이상)으로 운반 ▲핵폐기물 연구 후 무단 폐기 등 도심 한복판에서 연속적으로 드러나는 현안들에 적절하게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원연의 연구개발에 있어서도 무리한 연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천억 원이 투입된 수소 원자로 개발은 어느새 보이지도 않고, 검증을 우선해야 할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올해부터 핵물질을 ㎏ 단위로 진행될 예정인데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고, 대전시민의 뜻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특히 고속로와 함께 올해 예산이 오히려 증액됐다는데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된 과정부터 시민들에게 지역 국회의원은 소상히 밝혀야 한다. 이러한 무리한 연구의 대표적인 또 다른 사례는 1000억 원의 적자만 남은 허울 좋은 요르단 원자로 수출이 그것이다. 이 적자는 시공사에 그대로 떠넘겨졌다고 한다. 또한 스마트원자로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됐다고 하지만 개발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서 공동개발을 위한 투자가 들어온 것이 적절한 표현이며, 설계 또한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아 추이가 주목된다. 물론 담당자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상 받고 퇴직하면 그만이라 요르단 수출처럼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편 원자력 분야의 연구는 권장할 만한 부분도 있다. 최근 한 중소기업에 기술 이전으로 1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게 해 100억 원의 포상금을 수여한 원연의 조성기 박사와 고(故) 변명우 박사팀의 경우는 향후 원연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원연의 연구개발은 이처럼 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력으로 기초 분야에 매진해 고용 창출 등 파급효과가 높은 분야에 집중하고, 국민적 현안인 안전 분야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폐쇄 공간에서 원자력공학과를 위한, 연구를 위한 연구와 같은 형식적 과제에 집중해 국민과 계속 멀어지면 결국 존립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하는 원자력 연구개발을 그대로 답습하는 연구원장 선정은, 원자력에 관한 새로운 국민적 비전을 갖고 불과 수개월 뒤 들어설 차기정부로 넘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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