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해부학자 페살, 의료사고로 곤혹

(지난 회에 이어서) 각설하고, 그는 이 시신의 해부 후에는 뼈로 해부학용 골격을 만들어 대학에 기증했는데 이것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지금 바젤의 해부학 박물관에 있다. 이렇게 명성을 떨치던 그가 모든 직위를 내놓고 칼 5세의 궁에 들어가 주치의로 일하게 되는데 D.싸세 박사는 그의 이런 결정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왜 그는 날리던 명성을 접고 왕의 주치의로 들어갔는지? 그의 짐작은 아마도 대대로 왕의 주치의로 살았던 집안 전통 때문에 그 역시 자연스럽게.

그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이 길을 들어서지 않았을까 한다. 그는 다른 7명의 동료 의사들과 함께 스페인왕 칼왕(1500~1558)의 주치의로 일한 다음엔 왕의 아들이자 차기의 왕이었던 필립 2세(1527~1598)의 주치의로 재직한다.

그의 이런 명성에 걸맞지 않은 일이 터졌다. 그가 스페인의 한 귀족을 수술할 때 살아있는 심장을 건드렸기에 죽음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 실력이 특출한 그가 실수를 한 듯하다. 이런 연유로 그는 귀족 가족들에 의해 살인죄로 고발되었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판결까지 받았지만 다행인지(=페살 측) 불행인지(=귀족의 가족들) 그는 필립 2세의 덕으로 죽음에서 모면했다.

필립 2세가 그를 살려주기 위해서 갖은 공권력을 동원했다고 한다. 목숨을 부지한 그는 필립 2세의 조언에 따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났다. 당시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성지순례 장소는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이었다. 이런 곳에 성지순례를 떠나면 적어도 죄의 탕감이 빠르다고 보았다. 그럴지도 모른다. 비유로 보자. 우리가 그릇에 묻은 기름때는 그냥 물로는 잘 지워지지 않지만 강력한 세제를 쓰면 금방 그릇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당시인들은 이스라엘 성지를 이런 강력 세척제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예수가 태어난 곳이기에 아마도 죄 탕감의 지름길로 여긴 듯하다.

다시 본 얘기로 돌아와, 당시 통상적인 교통인 배를 타고 떠나야 했기에 베네치아 항에 도착했던 그는 베네치아에서 이스라엘 가는 배를 탔고 많은 속죄를 끝낸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를 타게 된다. 하지만 돌아올 때 배에 문제가 생겼다. 그가 탄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난 데다 배에는 물과 음식이 이미 고갈된 처절한 상태였다. 이미 몇몇 승객들은 이 배에서 죽어 나갔다. 이 배는 이오니아 바닷가의 한 섬에 우여곡절 끝에 당도했지만, 승객들은 모래사장에 쓰러져 기진맥진한 채 죽어갔다. 여기에 페살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이 섬에 다 묻히긴 했지만 아직 페살의 묘는 발견 못하고 있다고 D.싸세 박사가 밝혔다.

한 500년 전 이름을 날리던 한 의사가 배를 타고 죄를 씻으러 이스라엘로 떠났고, 돌아오면서 풍랑을 만나 죽어갔다니 그의 영혼이 더 애처롭다. 같은 배에 탓 던 이들의 죽음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그가 역사에 남을 해부학의 권위자라서 더 그러한가? 확실하다. 인간이 낮은 곳에서 삼각점 꼭지로 올라가는 것은 보기에도 좋으나 높은 꼭짓점에서 이래로 떨어지는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더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