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남대학교 총장/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선덕여왕은 632년에 즉위해 나라를 다스린 16년 동안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예지력을 발휘한 것이 세 건 있었다. 이미 드러난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헛소리를 하는 국가 지도자가 많은 판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은 보통의 지혜로썬 불가능한 일이다.

①당나라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그 씨앗 석 되를 보내온 일이 있었다. 여왕은 그림의 꽃을 보고는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씨앗을 뜰에 심도록 했는데 정말 꽃이 되어 낙화될 때까지 향기가 전연 없었다. 이에 신하들이 기이하게 여겨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모란꽃이 향기가 없을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하기를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당 태종이 나의 배우자 없음을 희롱한 것이다.” 이는 선덕여왕의 세심한 관찰력과 뛰어난 분석적 판단력 때문이다. 꽃에는 으레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인데 그게 없으니 향기가 없는 것이라 추측한 것이다. 당 태종과 선덕여왕이 수준 높은 지혜 대결을 한 것이다. 당 태종은 홀로 사는 여왕을 조롱한 것이고 선덕여왕은 ‘향기로운 황제의 사찰’ 분황사를 건립해 한 수 높게 응수한 것이다.

②선덕여왕 즉위 5년 차에 개구리울음을 듣고 적을 물리쳐 또 한 번 백성들을 놀라게 했다. 경주의 성진리 강가에 있는 영묘사라는 절 안의 옥문지(玉門池)에서 겨울인데도 3-4일간 개구리들이 심히 울었다. 이에 왕은 급히 각간이었던 알천과 필탄 등에게 정예병 2000명을 선발해 속히 서쪽 교외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에 숨어있는 백제 군사 500명을 죽이고 뒤 따라온 후속 부대 1200명도 모두 죽이라 했다. 신하들이 놀라 경위를 여쭙자, 왕이 대답하길 “개구리가 성난 모습을 하는 것은 병사의 형상이다. 옥문(玉門)이란 여자의 음경(陰莖)이다. 여자는 음(陰)이고 그 빛은 흰데 흰빛은 서쪽은 의미한다. 그래서 군사들이 서쪽에 와 있음을 알았다. 또 남근(男根)은 여근(女根)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니 백제의 군사가 신라의 여근곡(女根谷)에 숨어 있으므로 잡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제군은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선덕여왕의 예지력에 의해 전멸되었다. 여근곡(女根谷)은 실제 경주 근교 건천에 소재하고 있으며 여성의 성기와 닮은 지형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여성=음, 백색=서쪽이라는 음양의 원리를 활용하여 적군의 위치를 정확히 지목해냈다. 남근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은 이 일화의 깊은 진리에 해당한다. 실제로 신라 시대엔 남녀관계가 매우 개방적이었다. 황남리 고분의 출토품(토우)을 보면 나체와 과장된 성기, 성교 중인 모습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다산(多産)을 염원하는 의례적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③선덕여왕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이 또 하나의 예지이다. 왕이 아무 병도 앓지 않았는데 신하들에게 “내가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고 명했다. 신하들이 그곳이 어느 곳인지 몰라 왕에게 물으니 “낭산(狼山) 남쪽이니라.”고 답했다. 예측한 그날이 되니 과연 왕이 붕(崩/사망)하니 선덕여왕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했다. 불경에 “사천왕사(四天王寺)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는데 이제야 선덕여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운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내일인데도 모른 채 오늘 자기 구두를 새로 맞추는 것이 바로 인간 모습인데 자기의 죽은 날을 정확히 깨닫고 준비하며 산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한 사실인데도 죽음 준비를 못하는 이가 많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를 알았고, 묻힐 곳까지 알려주고 떠났다. 평소에도 신하들에게 많은 지혜를 알려주었지만 자신의 죽을 날과 묻힐 곳까지 알고 떠난 여왕이 대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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