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수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중부지사장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중부지사에 80세가 넘으신 어르신께서 보험료가 너무 많아 부담이 된다며 불편한 다리로 찾아오신 일이 있었다. 연세가 많으신 노인 부부 단둘이 사는데 보험료가 20여만 원이 나와 매월 보험료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전혀 없어 끼니를 걱정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어르신은 “보문산 자락에 오래된 집과 대지가 전부고 벌이가 마땅치 않아 폐지를 주어다 파는 상황이어서 주택의 일부를 임대해서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며 “집에서 밥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라고 매달 보험료만큼 집 벽돌을 뜯어가라고 화를 낸 뒤 돌아가신 일이 있다.

이러한 보험료 관련한 국민의 불만 민원은 굳이 2014년 발생된‘송파 세모녀’자살사건이 아니어도 건보공단 민원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과거 의료보험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1977년에 처음 도입됐으니 올해로 꼭 40주년이 된다. 제도 도입 후 불과 12년 만인 1989년에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보험적용이 확대됐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칭찬할 만큼 세계적으로 우수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지역가입자,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등으로 적용 대상이 구분됐고 가입자마다 부과체계가 달라 보험료가 실제 소득수준에 맞지 않다는 불만과 함께 형평성 논란이 지속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지난달 23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오랜 노력 끝에 어려운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살피면 서민부담을 줄이고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소득파악률과 연계해서 점차 소득 비중을 높여 3단계에 걸쳐 개편하는 방안이 주 내용이다. 연간 500만 원 이하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경우에 성·연령 등에 부과하는 평가소득 보험료가 폐지되고 대신 연소득 100만 원 이하 세대에는 1만 3100원의 최저보험료가 적용된다. 또 재산과 자동차에 부과되는 보험료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소득과 재산이 많음에도 피부양자로 등재돼 무임승차하거나 보수보다 많은 보수 외 소득이 있으면서도 일반 직장인과 동일한 보험료를 냈던 직장가입자에게는 보험료를 더 납부하게 함으로써 가입자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만일 정부 개편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1단계 기준), 지역가입자의 77%에 해당하는 583만 세대의 보험료가 지금보다 평균 20%(월 2만 원) 인하되는 반면 인상세대는 4%인 34만 세대에 불과하다. 또 전체 피부양자 2049만 명 중 많은 소득과 재산이 있음에도 무임승차했던 10만 명(7만 세대)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보험료가 부과되고 보수 외 3400만 원 이상의 소득이 파악된 직장가입자 13만 세대에 대해선 보수 외 소득에 대한 보험료가 부과된다.

물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구분을 아예 없애고 소득으로만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수다. 하지만 현재 지역가입자의 절반이 소득 과세자료가 없는 상황이고 전체의 76%는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파악되는 상황에서 소득기준으로만 보험료를 부과하면 또 다른 불형평성 문제가 나타난다. 따라서 정부개편안은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소득파악률을 높여 소득중심의 부과 기반을 강화해 단계적으로 개편하자는 것으로 부담의 형평성과 국민의 수용성 그리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중요한 점은 정부의 개편안 발표로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사실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어렵게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의 첫걸음을 내디딘 만큼 국민의 의견을 더욱 수렴하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친다면 지금보다 더욱 공정하고 국민이 원하는 보험료 부과체계가 만들어지리라 기대한다. 사무실을 찾아와 매달 보험료만큼 집 벽돌을 뜯어가라고 화를 내시며 돌아갔던 그 어르신과 웃는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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