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대전시 명예시장/문화체육관광분야

작년 10월 말 생각지도 못했던 대전시 문화체육관광분야의 제5대 명예시장에 위촉되었다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당혹스럽기만 했다. 명예시장제도에 대한 정보가 나부터 부족했고 6개월 임기에 명예시장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명예시장이란 직함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낯선 일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설명해본다.

시민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탄생한 민선6기 대전시 명예시장제도는 8개 분야별로 대표성을 띠고 현장의 소리를 전달한다. 사실 관련 공무원이 아님에도 대전시정 주요 회의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으나, 공식적으로 역할에 대한 책임 또한 명백하다. 그것은 바로 메신저의 역할이다. 메신저는 단지 전달자에 불과하기에 권한은 없지만 핵심은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명예시장은 문자 그대로 시장이 아닌 명예에 방점을 달고 있고, 아이디어나 정책이 실현되기까지는 고려해야 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시장들이 제기하는 안건이 상당 부분 정책에 반영됐으며, 제안이 당장에 구체화되기는 어려워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면 수용될 수 있다는 실천의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겪었다. 예컨대 명예시장의 시설탐방은 일반 시민으로서의 방문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영역을 업무보고라는 형식을 통해 내부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었고, 기관을 이용하는 시민 입장뿐 아니라 운영자 입장 양쪽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탐방은 단순히 외관상 보이는 건축물에 대한 탐방이 아닌 소프트웨어적인 운영 조직에 대한 성격이 더 컸다. 주어진 일정에 현실적으로 모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활동을 하며 느낀 몇 가지 의견을 적어본다.

첫째, 예술생태계 전반이 발전하려면 리더의 의지나 시민의 의견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성을 지닌 종사자들의 능력 또한 중요하다. 현장에서 직접 예술가, 시민들과 접촉하는 그들의 역량에 따라 대전 문화 지형이 바뀐다. 기관에 따라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능력계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전문성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가집단의 능력이 향상할수록 수준 높은 문화가 펼쳐지며 그 혜택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행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둘째, 기존 공연장 활성화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 기관이나 공공건물에는 크고 작은 공연장들이 갖춰져 있다. 공연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과 제반 시설들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예술이 생활의 일부로 스며들어 저절로 문화대전의 내공을 키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음악전용공연장이 건립되기 전까지 부족한 대관문제는 음향시설이 훌륭한 주변 공연장의 배려와 협조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셋째, 대전은 HD드라마타운이 거의 완공단계에 이르렀고 연극· 애니메이션· 영상 관련 인적자원이 풍부하다. 영상산업이라는 하드웨어적인 큰 축을 따라 소프트웨어적인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짜여 질 때 대전이 영상산업의 메카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진다. 과감한 아이디어의 수용과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콘텐츠 개발이 절실하다.

넷째, 예술가에 대한 지원과 복지는 미약하지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청년예술가들에 대한 대전시의 전폭적인 지원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제는 수혜자인 예술가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물적 지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활동자금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더 어려웠던 시절보다 오히려 예술혼을 지닌 진정한 예술가들을 찾기가 점점 어렵다.

이제 명예시장이란 이름으로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을 잘 마무리해야 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단순히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끝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며 전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명예시장의 이름이 부끄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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