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어디 나왔어?" '학력 갑질' 일상화된 사회

#. 고졸자로 대전의 한 대기업에서 2년간 근무했던 A 씨(여)는 재직 중 학력을 묻는 질문에 스스로 위축될 때가 많았다. 급여나 인사 등에 있어 한계를 느끼고 이 때문에 학업 연장을 권유받기도 했다. A 씨는 현재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의 대입준비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했다.

청년 고용절벽이 가중되면서 고졸 청년 직장인에 대한 위협도 커지고 있다. 기술과 경험을 쌓아 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 취업전선에 나섰지만 고용 현장의 질은 열악하고 ‘고졸’이란 꼬리표가 갖는 한계도 크다.

정부가 2008년부터 고졸 취업 확대 정책을 펼치면서 2010~2015년 고졸자 취업률은 25.9%에서 34.3%로 상승했다. 그러나 질적 측면을 들여다보면 고졸이 마주하는 고용 현실은 참담하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3∼2015년 특성화고 졸업생 중 4대 보험에 가입된 취업자 비율은 30.4%에서 26.4%로 감소했다. 현장실습에 나선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현실은 더 냉엄하다. 2011년 현장실습제도가 시작됐는데 일부 기업의 부당한 대우와 갑질에 대한 호소가 쏟아진다. 얼마 전 해지 방어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홍 모(19·여) 양은 특성화고에 재학하면서 실습생 신분으로 일하면서 고된 고용 현실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사업장은 홍 양이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귀가 시켜주지 않아 매우 힘들어했다고 유족들은 증언했다. 2011년 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실습생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고 2012년엔 건설 해상크레인 작업선이 전복돼 현장실습생이 목숨을 잃었으며 한 공장에서 일하던 김 모 군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사고를 당한 김 모 군도 특성화고 출신의 고졸 취업자여서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 과정에서 갖가지 인권 유린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상황에서 정부가 취업률이라 숫자만 너무 신경 쓴 나머지 고졸자 사후관리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남성의 경우 군대 문제도 걸림돌이다. 대부분 회사가 군필자를 선호해 취업의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고 아르바이트조차 대학생이나 군필자를 뽑는 경우가 많다. 일자리를 구하고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군 입대를 앞둔 B 씨는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전역 후 다시 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어렵게 일자리에 정착하고도 임신, 출산 등으로 인한 퇴사가 경력단절기로 이어져 재취업 또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조차 고졸 채용에 소극적이다. 교육부는 2014년 10월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에 힘쓰겠다고 강조했자만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시·도 교육청별 고졸 채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의 고졸 채용은 평균 2%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전은 1.4%로 평균을 밑돌았다.

경기 악화로 대졸 채용 여건도 열악해지면서 고졸 취업자나 구직자들이 대졸에 치여 취업전선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대졸의 하향 취업지원에 고졸들이 치이는 거다.

한국고용정보원 박상현 연구위원은 “정부의 고졸채용 활성화 정책으로 일자리를 많이 양산됐지만 막상 입사해보면 고졸이라는 이유로 부당대우나 학벌 차별을 받아 퇴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급여·인사 등에 있어 고졸 취업자에 대한 정부의 꾸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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