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 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鄭芝溶)시인의 향수(鄕愁).

한국적 농촌의 풍경이 가슴시리도록 배어있어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리움과 정겨움으로 다기와, 동심으로 멈춰 향수에 젖는다.

행복도시(신도심)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도심 한 공간을 가로지르는 제천 변은 아름동∼금강줄기에 흘러들어 간다. 방축전과 더불어 신도심에 조성된 ‘힐링’공간의 브랜드다.

제천 변 곳곳에 깔끔하게 조성된 잔디위로 쉼터와 운동기구, 산책로로 이어져 도심의 허파구실을 하고 있다. 곳곳에 징검다리를 놓아 운치를 높였다.

이 같은 제천 변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해 8월. LH 세종본부는 총 15억을 들여 보행전용교 설치에 들어갔다.

신규 보행교는 인근 아파트주민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보행교 3곳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는 것이 LH 측의 설명이다. 교량길이는 42m와 폭 6m의 규모로 철근 콘크리트다.

교량 1교의 경우 ‘슬림한 형태를 연출하기 위해 반단면 형식’으로, 2교는 ‘학생들의 보행안전을 고려한 계획’, 3교는 ‘주변 상업시설과 보육시설을 반영, 심플하게’계획했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의 반응은 어이없다는 분위기다. 공사기간 내내 불편도 있지만, 경관훼손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아기자기하게, 정겹게 이어진 징검다리는 한낱 설치물로 방치될 수 있는가 하면, 콘크리트 교량으로 인해 시골운치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경관을 망친다는 우려다.

보행 1교부터 3교까지의 거리는 대략 1㎞다. 이 구간에는 신도심 건설 당시에 건립된 대형 교량이 4개나 된다. 교량은 아파트단지를 연결하고 도심교통흐름을 매끄럽게 해주고 있다.

이 구간 내 보행교 3곳이 설치되면 기존 1㎞의 4개 교량을 합쳐 무려 7개의 교량이 다닥다닥 붙어 있게 되는 셈이다.

보행전용 3교량의 경우 기존 아람1교와는 불과 150여m 떨어져 있다. 더구나 이 교량은 나래 초등학교와 완충녹지 공간 사이인 50여 m. 기존교량과 붙어있는 거리다.

보행전용 2교와 3교의 경우도 비슷한 여건이다. 아름중학교와 아름고 등 기존 교량에서 200∼300m 거리에 떨어진 곳에 불과한 데도 신설교량을 놓는 것이다.

지난 4일자 ‘제천 변 보행교 다닥다닥’ 제하의 본보 지적과 관련해 세종시 포털 커뮤니티 ‘세종시 닷컴’에 게시되자 네티즌들의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가운데 댓글 대부분은 LH의 무분별한 행정을 지적했다. 추가 보행교 설치로 인한 자연경관 훼손과 사라질 낭만을 우려했다. 특히 자녀들에 대한 과잉보호를 지적하고 “어린이들을 걷게 해주자”는 조언이 눈길을 끌었다.

도심 속의 개울을 조성하고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자연환경. 이기심의 산물로 자녀들이 나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볼 때다.

향수의 ‘실개천’ 소재는 유년의 회상을 강하게 환기시켜주는 촉매제다.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어릴 적 마음에 새겨질 만한 향수를 간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

도심 속의 자연경관다운 조성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종=서중권 기자 013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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