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 차려진 풍광에 묵은 응어리를 털어내다

 

#. 두 바퀴로 호반 한 바퀴

옥천역을 출발 정지용 생가 거쳐
대청호반 금강줄기 따라 56km
37번 국도 전까지 오르막의 연속
초보자라면 장계관광지서 휴식을

 

라디오가 나왔을 때 이제 신문매체는 사라질 거라 했다. 이후 TV가 발명됐을 땐 라디오는 이제 쓸모없을 거라 했다. 하지만 신문은 물론 라디오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

이동수단 역시 마찬가지다. 기차가 개발됐을 땐 자전거를 탈 사람은 없다고 했다. 자동차가 세상에 태어났을 땐 기차를 누가 타겠냐며 앞으로 사양산업이 될 거라 했다. 그러나 자전거와 기차는 아직까지 우리 삶 속에 함께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대체품이 지금도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인간은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록 TV보다 정보전달 속도가 느리지만 신문과 라디오가 주는 감성이 있다. 자동차보다 느리지만 자전거, 기차와 함께하는 여행은 낭만이 있다. 느림이 주는 미학이다.

느림의 미학이란 무엇일까. 어느 누구도 시원하게 답을 주기 힘들다. 느림을 통해 얻는 고통 끝에 성취할 수 있는 뿌듯함이라고 할 수도, 아니면 느림 자체가 주는 감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확인하고자 그렇게 대청호를 바라보며 자전거에 올랐다.

 

◆고통 뒤의 행복이 반복되는, 울고 싶을 때쯤 웃게 되는 초반

전국적으로도 유명해 자전거 좀 탄다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가야할 성지인 충북 옥천의 향수100리길 총 연장 56㎞, 소요시간은 휴식시간 없이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옥천역 앞에서 자전거를 대여하고 향수 100리길의 공식 출발지인 정지용 생가를 향해 본격적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정지용 생가까지 공식적인 자전거도로가 없지만 차량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을 알고나 있듯 속도를 줄이며 자전거 운전자를 배려한다.

옥천역에서 정지용 생가까진 약 2~3㎞에 불과해 본격적인 운동에 앞서 근육을 준비시키기엔 적당하다. 중간 정지용 생가를 알리는 이정표엔 향수100리길도 함께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정지용 생가에 도착해 채비를 다시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향수 100리길에 올랐다. 정지용 생가를 출발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교동저수지가 반긴다. 출발부터 산뜻하다. 고개를 돌려 교동저수지를 바라보며 데크길을 따라가며 잔잔한 바람을 느낀다.

또 도로 한 편에 일반 도로와 자전거도로를 구분할 수 있는 파란 선이 있어 차량 역시 서행하며 무언의 격려를 보낸다.아직 땀이 나지 않아서인지 시원함이 온몸을 감싸며 의욕이 불타 오른다. 데크길의 편안함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왕복 2차선의 국도 37호와 합류한다.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차량이 많지 않아 자전거를 타는 데 위험하진 않다.

30여 분쯤 달렸을까. 첫 고비가 나온다. 보기에도 쉬워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힘껏 페달을 밟아본다. 충분히 붙은 가속도로 쉽게 오르막길을 오를 수 있단 생각을 잠시나마 가져보지만 10초도 되지 않아 이론은 이론일 뿐임을 깨닫는다.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조금 더 편안 옷을 입고 올 걸’이란 말도 안 되는 핑계거리를 대며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상대를 향해 거친 숨을 내쉬는 들짐승처럼 들숨과 날숨이 한껏 고조에 오른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 어떻게든 오르막길 끝에 올라오니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첫 고비부터 녹초가 된 허벅지를 충분히 마사지하고 내리막길을 향한다. 아까의 고통스러움을 잊으려고 할 순간 내리막은 벌써 끝났다.

계속 완만한 도로가 이어지지 않고 서너 번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울고 웃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가 느려질 때쯤 벚꽃길이 나오며 금강과 대청호 사이 어딘가의 경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땀방울을 걷어낼 수 있는 한 줄기 바람을 불어준다.

송골송골 맺힌 땀과 함께 체온을 앗아가며 시원함을 느낀다. 벚꽃나무의 벚꽃은 이제 막 지려고 하는지 바람과 함께 벚꽃 잎이 흩날린다. 이제 산화되려는 불잉걸 같은 연분홍과 벚꽃의 새순인 신록이 합해 색다른 장막을 펼치며 따가울 수 있는 햇살을 막아준다.

벚꽃길이 끝나면 다시 데크길이 나온다. 대청호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달릴 수 있는 구간이다. 좋은 바람, 좋은 기온을 느끼고자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왔단 걸 잊은 채 천천히 산책해 본다.

데크길은 완공되지 않아 끊겼지만 대청호 옆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단 사실 하나로 마음을 달랜다. 그리고 장계관광지에서 휴식을 갖는다.
 

#. 문학이 싹튼 곳, 향수가 깃든 곳

향수길의 하이라이트 안남면과 가덕교
여행자 수고스러움 치하라도 하듯
벏은벌, 굽이치는 금강의 파노라마
말없는 페달질도 운율로 빚어지고
봄날, 감성 자극 라이딩 코스로 제격

 

◆시골길 같이 담백한 안남면 자전거길

장계관광지를 나와 국도 37호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안남면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오르막길이 두 개 정도 있고 경사도 높지만 내리막길에선 절정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허벅지에 이어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자전거 초보자라면 한 번씩 느낀다는 엉덩이 통증이다. 엉덩이 통증과 더불어 허벅지까지 동시에 아프니 하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페달을 밟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하지만 이곳부턴 전체적으로 도로가 완만한 편이어서 어떻게든 통증을 참고 30여 분을 달리면 안남면이 나온다. 안남면은 과거 KBS의 예능인 1박 2일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시골길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설과 추석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누구나가 상상하는 풍경이다. 안남면으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개가 짖으며 우리를 반긴다. 시골길이란 구수한 멋에 시선을 뺏긴 채 페달을 천천히 밟는다. 이번엔 굽이치는 금강변이 오른편에 나온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면서 이름 없는 낮은 산이 햇살을 막아준다. 흠뻑 흘린 땀으로 옷이 젖었지만 바람이 불면서 상쾌함을 맛본다. 어느덧 중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장계리까지 오는 데 성공한다. 장계리에서 오른쪽으로 손잡이를 틀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비포장도로를 피하기 위해서다. 비포장도로가 짧은 탓에 가덕교까지 역시 금방이다. 가덕교 아래엔 돌다리길처럼 생긴 아스팔트길이 맞은편과 맞은편을 이어준다. 충분히 자전거로 지날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코스를 이탈해 본다. 그리고 자전거로 금강을 가로질러 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서 한껏 햇살은 머금은 금강이 비단같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짧은휴식을 갖고 대청호의 발원인 금강을 양손에 담아본다. 햇살을 반사한 반짝이는 황금빛 들녘은 손을 빠져나오지만 충청의 젖줄인 포근한 느낌은 향수처럼 남아있다. 향수 같은 대청호에 대한 향수를 남긴 채 손잡이를 돌렸다.

넓은 벌 동쪽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중략)…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그렇다. 대청호반은 그렇게 잊힐래야 잊힐 수 없었다.
 

총평 ★★★★

굳이 자전거를 갖고 가지 않아도 된다. 옥천역 앞 자전거대여소에서 1인당 하루에 1만 5000원으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향수100리길 코스는 대청호를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면 잡념을 떨쳐낼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장계관광지까지의 초반은 오르막이 꽤 있어 초보자에겐 매우 힘들다. 또 데크길이 완공되지 않아 일정 구간은 차로로 달려야 한다. 장계관광지 이후 안남면부턴 코스가 완만한 데다 풍경도 아주 좋다.

자전거를 타다 힘들면 자전거대여소에 전화해 픽업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1.5톤 트럭에 자전거와 함께 사람을 실어주는데 이게 은근히 묘미다. 꼭 신청해보자. 다만 다른 운전자들이 신기하단 듯 쳐다보는 눈빛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자전거를 탄 후 인근 명물인 물쫄면도 먹어보자.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신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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