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 독립이란 주제는 좀 생뚱맞다. 그러나 사드배치와 관련하여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논의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는 마치 미국 중심의 무력강화로 해결하려는 것에 집중되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또한 모든 다른 국가생활의 문제들이 안보논리에 묻혀서 더 이상 진정한 방향으로 논의되지 않는 것도 슬픈 일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여 이득을 본 것이 바로 안보문제다. 매우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하면서도 선거장사에서 재미를 보는 측들은 항상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도 다른 때와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안보는 결코 강력한 무력이나 외세로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확신이다. 제 나라를 지키는 것은 외국의 군대나 지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협력과 동맹관계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요동치는 변화가능성을 가진다. 혈맹이란 말은 다만 서로 이득이 보장될 때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 대신 국가의 안보는 자기주체성이 확립된 상황에서 벌이는 평화안보다. 그러려면 언제나 국가 자체에 자기가 누구라는 정체성이 분명히 세워져야 한다. 국민 전체의 굳은 주체의식 속에서 안보는 확립된다.

우리 한반도를 놓고 볼 때, 거기에는 몇 가지 생각할 것들이 있다.

첫째, 여기에서는 어떤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이것은 동시에 어떤 전쟁도 우리들의 뜻이 반영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가 다른 지역, 지금은 우선 대립관계에 서 있는 지역에 대한 무력행사 역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고히 해야 한다. 더욱이나 대통령이나 모든 정치가들은 이 점에서 더욱 굳건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의 문제를 놓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세력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게 된 상황 자체가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자아가 상실된 상태의 허약한 모습이다.

그 다음, 강력한 무력으로는 결코 다른 강력한 무력을 방어하거나 억제할 수도 없고, 사용불가능하게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떤 창조하는 삶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면서, 부정의 파괴만을 가져올 뿐이다. 상대방의 강력한 공격무기를 무력화하기 위한 방어무기를 개발하고 배치해야 한다는 논리는 전혀 거짓이다.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가지고 사용하겠다는 논리밖에는 없다. 그러나 모든 세계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지금은 결코 강력한 무기를 도구로 하는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런 전쟁은 비록 어느 한 지역에서 터진다 할지라도 전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전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가 안에서 무력안보에 참여하는 것은 앞서 가는 나라들의 무기산업과 무기장사에 편승하는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셋째는 모든 갈등은 대화를 통한 상생과 평화의 기운으로 푸는 일이라는 점이다. 분열주의나 자기중심의 고립주의에서 벗어나서 서로가 한 인류로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소통과 대화와 신뢰를 쌓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지금은 어느 적대세력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없애야만 내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철학 자체가 사라지는 때다. 어떤 적대세력과도 상생관계요 협력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세계다. 그렇지 않다고 누가 혹시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든지, 시대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전제를 놓고 볼 때 도둑질하는 것처럼 한밤중에 사드를 배치한 상황은 국가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뭉개버린 짓이다. 이것은 탄핵으로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안보실장이라는 자와 그 주변 세력, 그것을 그대로 방조한 대통령권한 대행이라는 자들이 벌인 아주 무책임하면서 참으로 난감한 일을 다음 정권과 국민에 안겨준 파렴치한 사건이다.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문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국을 드나들면서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그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여기에 새로 되는 대통령과 정권에게 참으로 큰 시련과 함께 기회가 주어졌다고 본다. 이번 사드배치문제는 우리 역사의 길고 긴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성 확립의 문제로 직결된다.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해방된 이후에도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강대국의 뜻을 받아 결정하였다. 이것은 독립된 나라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 사드배치의 문제로 국가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당당한 외교와 안보를 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미 들어와 있는 사드장비들은 국민의 동의 없이 된 것이라 하여 당장 가지고 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급 장비를 고철화할 필요는 있다. 작동을 시작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구걸하다시피 하여 배치된 장비이기에 그것을 운영하는 비용을 요청받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제는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의 허락 없이 된 것이니 그것을 지렛대 삼아 정확한 우리의 위치를 설정할 때라고 본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눈치 보는 외교, 줄타기 외교가 아니라, 이미 들어와 있는 그 무기를 볼모로 주체외교를 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냉전도 사라진 지금, 모두가 다 실리를 추구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강력한 중립외교가 필요한 때가 됐다. 우리 남북은 함께 살 존재요, 우리 한반도는 어디 한 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의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 된 대통령과 우리 전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이제야 말로 평화로운 독립 국가를 수립할 기회를 실현할 때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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