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부여군수

폭동이 아니라 목가적인 분위기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1789년)은 자유와 평등, 박애를 유럽에 전파했다. 절대왕정의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로, 당통, 마라로 대표되는 혁명정부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하고, 1만 7000여 명의 정적을 형장의 이슬로 보내며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베스피에르 역시 자신이 써먹은 방식 그대로 재판을 받아 단두대에서 생애를 마쳤다. 공포정치는 프랑스 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1인 독재를 초래하게 했다.

반면, 아프리카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경우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백인들의 차별에 고통당하고, 약 27년을 감옥에 복역했던 그는 “백인은 우리의 친구이고, 그들이 남아공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만델라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으며, 전임 데클레르크 백인 대통령과 신뢰와 양보를 통해 인간존엄성을 짓밟는 나라로 낙인찍힌 남아공을 세계시민 국가 반열에 들게 했다. 1993년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5월 9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이번 정부에서는 극단적인 진보나 보수는 거세되어야 한다. 광신(狂信)과 맹목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효율적이어야 한다.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이 조화롭고 균형적인 발전을 이뤄야 한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전술적이 아닌 전략적 토대를 구축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19대 행정부는 불통과 반목, 분열, 분노, 차별이 아닌 희망과 배려, 소통, 친목, 나눔 등을 하나의 척추처럼 매달고 가야 할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이 바라는 지도자는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를 이끈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라, 만델라 대통령처럼 신뢰와 양보를 기반으로 현실의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고, 잘못된 것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지도자,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프랑스 혁명 초기 프랑스를 이끌었던 미라보는 “혁명에서 어려운 것은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수습하는 일”이라고 했으며, 만델라 대통령은 “미덕과 너그러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보답해 준다”고 했다. 로베스피에르인가, 만델라인가? 건강한 대한민국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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