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환 건양대 교수(법학박사)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사태로 촉발된 혼돈의 정국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막을 내렸다. 그동안 국민들은 한국정치를 보면서 민주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 못해 자괴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정당정치나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국민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주변 4강의 움직임과 함께 외교를 포함한 국가안보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아이러니가 일상화됐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 전 세계에 위력을 과시하며 태양이 지지 않는다는 영국의 의사당 ‘웨스트민스터’에서 작가이자 정치가인 디즈레일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영국이 아니라 영국의 국민들이 믿고 있는 상식”이라고 역설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상식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 푸대접을 넘어 아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된 느낌이다. 상식과 거리가 먼 일들이 너무도 자주, 그리고 태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겠다는 취지에 따라 여야 합의가 안 된 의안처리를 위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의결정족수를 요구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의 입법기능은 거의 마비상태이다. 가중된 의결정족수가 통상적인 법안 처리에 언제나 통용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헌법에 위반되며 다수결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도 어긋난다. 문재인정부도 국회의 협조가 없다면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식물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민주주의 기본원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법치주의 원리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 곳곳에 서 여전히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팽배해 사회지도층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편법과 법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국민들은 몰상식이 가장 횡행하는 곳이 정치판이라고 믿고 있다. 불경기에 국민이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민생을 위한 입법에는 관심이 없다.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저출산으로 나라의 앞날이 어두운데도 정권창출이나 당권쟁탈을 위해 허구한 날 싸움질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문화계 인사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하는 것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판의 몰상식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별것 아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며 제 본분을 지켜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게 되는 아주 평범한 사회다. 상식의 정치에는 거창한 논리나 탁월한 주장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국민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정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치를 통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부름을 받은 심부름꾼이자 봉사자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법을 만들고 집행해야 한다.

노무현정부의 슬로건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고 이명박정부는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줄곧 주장했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여의치 않은 곳이 바로 우리 사회다. 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했다.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새 정부에 바라는 소박한 소원이다.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