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학교 교수

 

1439년 피렌체에서는 메디치가 후원에 의해 종교회의가 열렸다. 수백 년 동안 반목해 오던 서방과 동방 교회가 역사적 회의를 가진 것이다. 이때 동방으로부터 온 대표단의 이국적 풍습은 서방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더 큰 뉴스는 서방과 동방의 만남 그 자체에 있었다. 그때까지 서방에서는 개별적 현상에 일정한 법칙과 원리가 존재한다고 믿어 왔다. 반면 동방에서는 개별적 현상에서 일어나는 법칙 앞에는 어떤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서방과 동방의 생각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생각의 폭풍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서방이 갖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에 동방의 플라톤적 사고가 더해져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제까지 동질적인 것에서 찾지 못하던 돌파구를 이질적인 것과의 섞음에서 찾은 것이다. 이것을 ‘메디치 효과’라 한다. 서로 다른 것이 한 교차점에 모여 예기치 않은 혁신의 빅뱅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메디치 효과는 단순히 사변적 사고에 머물지 않았다. 예술, 문학, 건축 같은 다양한 영역과 분야로 번져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마침내 침울했던 중세의 암흑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르네상스를 맞이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요즘에도 이질적인 만남이 강조되고 있다. 인간과 정보기술의 융합이라는 만남이 그것이다. 산업계에서는 말할 것 없고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이 강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섭, 퓨전, 복합을 비롯하여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 등 융합과 관련된 유사어도 많다.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의 상이한 연결이 이곳저곳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만남이 그 어떤 만남 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마치 요술 방망이처럼 융합을 사용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융합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강조되어온 전문화는 필요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융합은 자기 분야의 독특성과 전문성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융합시대에도 기능 분화에 의한 전문화는 필요하며 전문가에 의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 놓는다. 다만 전문분야에서 해결 못하는 문제가 발생될 때 다른 견해나 아이디어를 가진 타 분야와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는 시각을 갖는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지식이 전문화될수록 다차원적 접근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문제 지향적 사고를 가진 융합적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따라서 융합은 전문성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 관계에 있다. 필요하다면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아야 하고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또한 융합이 지향하는 사고는 자기 분야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타 분야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독특성이 인정받고 싶은 만큼 타 분야의 독특성도 인정해야 한다. 타 분야와 소통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융합다운 융합은 자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전문성을 갖춘 뒤에 타 분야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과 자유롭게 소통해야 가능해진다. 이것이 융합의 원리이다.

융합이 두 개의 연결이라고 하지만 아무렇게나 연결하는 것은 아니다. 유사성을 가진 것끼리의 연결이라면 어떠한 융합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 그 다름이 작다면 융합의 영향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 현실과 이상의 대립과 같이 서로 차이가 많을 때 융합은 그 힘을 발휘한다. 새가 온전하게 날기 위해 완전한 좌우대칭이 필요한 것처럼 서로 다른 가치가 좌우에서 치열하게 대립될 때 융합에 의한 효과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융합은 서로 다른 존재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정신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교향곡이 여러 음과 여러 악기가 화음과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다. 교향곡은 개별 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음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 또 몇 개의 악기로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악기의 협주에 의해 만들어진다. 교향곡처럼 융합도 독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누어 상생의 질서를 만들어 낼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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