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대표

미래파의 앙드레 브르통과 입체파의 피카소가 즐겨 다녔다는 파리의 벼룩시장(Marché aux puces)은 골동품 시장으로 아주 유명하지만 소매치기들의 소굴로도 알려져 있다. 호기심에 이곳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은 낡고 헐어버린 케케묵은 오만 가지 골동품과 쓰다 버린 것 같은 생활용품을 팔겠다며 거리에 나온 장사꾼들의 모습에 놀란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장면은 소매치기로부터 자신의 지갑을 지키기 위해 배낭과 가방을 등 뒤가 아닌 가슴에 매고 두 손으로 꼭 안고 쇼핑을 하는 거대한 관광객들의 물결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벼룩시장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국제적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은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파리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클리냥쿠르(Clignancourt)다.

주로 주말마다 열리는 클리냥쿠르 벼룩시장은 주말이 되면 동네 전체가 마치 헌 물건들을 질서 없이 쌓아놓는 거대한 창고와 같은 느낌이다. 마치 무질서가 질서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이색적이다. 손님이 왕이라는 대형백화점과 할인매장에 익숙한 관광객에게 이 상항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나사가 빠진 서랍, 유리알이 깨진 안경, 머리가 부서진 인형, 먼지로 까만 사진 등을 팔겠다고 들고 온 상품들은 이미 그 기능을 다해 복구 불가능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일반 일상용품에서 죽은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기록물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무질서해 보이는 벼룩시장도 일반인들과 전문가들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그 나름대로의 운영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을 위한 장은 새벽 5시경에 개장하고 상품의 질과 가격이 일반 시간대와 다르다. 그리고 아침에는 관광객들의 피로와 허기를 달래줄 커피와 샌드위치, 점심때는 아랍 쏘시지 메르게즈(merguez)와 감자튀김을 파는 포장마차가 시장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저렴한 가격의 이 별미가 벼룩시장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가 된다. 더구나 이곳에서 우연히 보물을 발견해서 일확천금을 얻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금의 벼룩시장 모습이 내가 유학하던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발전해가는 인류 문화의 변화 과정 속에서도 벼룩시장은 20세기 초 피카소와 부르통이 예술의 영감을 찾던 그 때의 모습을 보존하는 역사와 기록의 충실한 창고로서의 역할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가격과 품질이라는 경쟁을 뒤로하고 시간과 함께 운명 지워진 물건 그 자체의 존재를 중시하는 벼룩시장은 소매치기의 극성도 품어주는 너그러운 장소이다. 대전의 여기저기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아직은 주변 도시에 소문이 날 정도로 붐비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 세월이 흐르면 대전의 기억과 추억의 창고로서 벼룩시장은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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