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국내 건설산업 변천사-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초석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시작으로 전 세계는 새로운 먹거리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치가 막대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근간이 되는 산업은 건설이다. 특히 한국은 20세기 들어 건설산업을 토대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최근 들어 건설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건설산업은 국가 경제의 초석이라는 의견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건설기술의 날을 맞아 근현대 한국의 건설산업을 살핀다.

◆국내 건설사의 주도로 국내 최초의 아파트를 지은 1950년대

한국의 고대 건설기술은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불교 사찰 건설기술이 발달했다. 조선시대 들어선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종묘나 서원 등 유교 사당 건축물이 발달했고 물자를 나르기 위한 토목공사와 뱃길 관련 기술도 강점이었다.

본격적으로 서양의 건설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한 건 조선 후기 서양 열강과의 교류를 통해서다. 당시 서양 열강은 기독교와 천주교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활발히 했는데 이를 통해 교회와 성당이 다수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당진 합덕성당 등이다. 기존 불교와 유교문화 중심으로 한국은 높은 용적률의 건설기술보단 높은 건폐율의 기술이 특징이었는데 기독교와 천주교의 영향으로 용적률이 높은 건축물과 건설기술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로와 철도 등 서양의 기술이 들어온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농경생활에 익숙했던 당시 한국은 자체적인 건설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

국내 기술로 주도적인 건축물을 세운 건 1950년대였다. 1956년 중앙산업이 준공한 서울 마포의 중앙아파트가 바로 그 건축물이다. 이른바 마포아파트였는데 중앙산업과 서독과의 제휴로 준공됐고 철과 시멘트 등을 이용해 지은 현대식 아파트였다. 당시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소식에 전국이 떠들썩했지만 세월이 지나 재개발을 하기 위해 중앙아파트를 철거할 때 살펴보니 철근이 들어갈 자리에 레일이 들어가 있는 등 건설기술은 미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 건설사가 주도적으로 아파트를 짓긴 했지만 핵심기술이나 부가가치가 높은 건설기술은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최초로 국내 기업의 주도로 건설했고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국내 주거 형태가 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었고 아파트 건설기술이 발달하게 됐다는 상징성이 있다.

◆사회간접자본 건설기술이 발달하고 아파트 부흥기인 1960~1970년 중반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선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기술이 주를 이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되면서 각종 개발사업이 시행됐고 국내 건설기술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건설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건설업법도 도입됐고 대부분 교량과 도로가 이 시기에 착공됐다. 2차 경제개발계획이 완료되기 직전 해인 1970년 들어서 국내 건설기술은 SOC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당시 압축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연평균 10.8%가 넘는 건설투자가 이뤄졌고 SOC성장률은 무려 12.6%에 달했다. 대표적인 게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다. 경부고속도로는 완공에 16년 걸린 것으로 예상됐지만 2년 5개월 만에 완공했을 정도로 국내 건설기술은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비용과 기간을 줄이기 위해 중앙분리대를 비롯한 안전시설을 갖추지 못해 차후 대형사고의 빌미를 제공했을 정도로 질적인 성장은 양적인 성장에 비해 더뎠다. 또 이후 10년간 유지보수비용이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을 넘었을 정도로 당시의 국내 건설기술은 제대로 여물지 않았다는 평이 높다.

아파트의 경우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주거에 대한 욕구가 아파트로 바뀌자 1970년대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본격화됐다.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여의도 시범아파트, 구반포주공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제방 기능을 겸한 강변도로 건설로 얻어진 매립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된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독주택은 일정 규모의 땅에 한두 채씩 지어 팔수 있지만 아파트는 최소한의 대지 위에 수백, 수천 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개발이 가능했다. 당시 아파트 건축기술은 판상형이 대세였다. 국내에선 주거지는 남향을 선호하는 정서가 남아 있어 아파트 전부를 남향으로 하고 배치는 ‘ㅡ’ 형태로 하는 게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해외 사업 수주를 통해 한국 경제를 이끈 중심산업으로 성장한 1970년 후반~1990년대

한국은 SOC와 아파트 건설을 통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1973년 10월 시작된 중동 전쟁이 석유전쟁으로 비화되자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에 직면했다. 바로 오일쇼크다. 오일쇼크로 인해 세계 유가는 종전보다 네 배나 올랐고 한창 고속 성장을 하던 한국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서독으로 진출한 광부 간호사들이 순수하게 노동력만 갖고 진출했다면 70년대 중동 진출은 인력과 기업(건설업 용역업)이 동반된 노동력 수출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비록 해외 건설사의 하청이긴 했지만 한국 건설업체가 주 계약자가 돼 공사를 따낸 것은 큰 발전이었다. 특히 노동력 진출은 해외 선진 건설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동 건설 진출은 1980년 초중반까지 이어졌고 이는 추후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의 인프라 구축에 큰 주춧돌이 됐다.

1990년대 들어서 다시 국내에 SOC와 아파트 건설사업이 주를 이뤘다. SOC는 경부고속도로 이후 늘어난 승용차로 고속도로 등의 수요가 늘자 대규모 토목공사가 크게 성장했다. 아파트는 획일화된 판상형 아파트에서 몇 세대를 묶어 탑을 쌓듯이 ‘ㅁ’자 모양으로 쭉 뻗은 아파트인 탑상형 아파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건설사들은 이 시기에 급격한 양과 질의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국제통화기구(IMF) 외환위기가 몰려왔고 국내 건설산업은 깊은 침체에 빠지게 된다.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줄어든 건설 투자

건설 투자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기여도는 IMF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인 2003년까지는 1%포인트 내외의 성장 기여도를 유지했으나 2004년 이후에는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1%포인트 미만으로 성장 기여도가 낮아졌다. 2008년 이후 건설경기 침체기에 건설 투자의 GDP 성장 기여도는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국가 경제 성장에 일정 부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건설 투자의 GDP 성장 기여도는 2009년을 제외하면 건설경기 침체 기간인 2008~2012년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기저효과로 건설 투자가 양호한 증가율을 보였으나 2014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다시 증가율이 둔화됐다.

4대강 사업이란 대규모 건설사업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20세기 후반에 비해 미약한 게 사실이다. 정부 역시 SOC 등 건설산업보단 미래 먹거리 등에 투자를 중시하고 있다. 아파트 등 주거 산업 역시 미분양 등으로 녹록지 않다.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70년간 건설산업이 국내 경제성장에 주역이었지만 앞으로의 고도성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형과 실적 위주가 아닌 효율과 성능 중심으로 발전이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승민 NH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2017년 경제 및 건설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국내 건설사는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2000년부터 큰 폭의 성장을 했지만 국내 주택 사이클과 해외 플랜트 사이클에서 손익 변동성도 확대됐다”면서 “국내 부동산 시장 변동성에 대비한 보수적인 수주 가이드라인과 계약관리 마련이 필요하다. 또 국내 주택 사이클의 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등 과거와는 다른 움직임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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