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수필가>

 

류인석 수필가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올해로 27년째다. 약관(弱冠)을 넘어 이제는 이립(而立)의 경지에 이르렀다. 구성원 모두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사명도 깨닫고, 지방자치의 책임도 인식해야 할 연륜이다. 충남도의회가 최근 기초단체에 대한 행정사무감사권을 부활시키면서 당사자인 시·군과 마찰을 빚고 있다. 물론 시시비비 양론(兩論)은 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초기 가뜩이나 어수선한 시기에 상·하급 자치단체 간에 권한 싸움을 노출시킨 것은 충남의 지방자치 수준이 아직도 유치함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시·군에 위임·위탁한 사무에 대한 감사권은 이미 충남도의회가 지방자치법 관련 조항에 따라 제정된 조례를 근거로 3년 전 폐지시켰었다. 그러던 도의회가 이제 와서 3년 전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감사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시·군에 대한 우롱이나 다름없다. 시·군 행정사무감사제 폐지 이후 새롭게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아니다. 또 행정사무감사 폐지로 인해 하등의 문제가 발생된 것도 아니다. 결국 시·군의 주장대로 “감사제 부활은 하급단체장이나 공무원들 길들이기”란 지탄만 받게 됐다.

기초의회와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충남도의회는 “지자체에 위임 또는 위탁된 사무를 제외한다”라는 관계법 시행령을 근거로 폐지시켰던 기초단체 행정사무감사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지자체 사무에 대해 직접 감사할 수 있다”라는 법을 근거로 다시 들고 나선 것이다. 언뜻 보면 법과 시행령을 놓고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은 개념을 통설(通說)한 광의적 의미를 나열한 것이고, 시행령은 법에 명시되지 못한 구체 사안을 명시한 것으로 해석하면 시비(是非)의 오해는 분명히 가려진다.

이미 폐지시킨 시·군 행정사무감사권을 도의회가 다시 들고 나온 발상은 일선 기초단체의 반발을 자초했다. 또 지극히 구태적이고, 비생산적이며, 우월주의적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민들이 바라는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충복(忠僕)의 사명과는 거리가 있다. 광역·기초자치의원들이 이 시점에서 권한이나 위상 갖고 싸움질할 때가 아니다. 안 그래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도지사의 도정(道政) 이탈 공백이 빚은 도민들의 여론이 분분하다. 제편 감싸기로 일부에선 침묵할지 몰라도, 다수 도민들의 속내는 다르다.

이미 저항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시·군 행정사무감사가 도의원들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우월적 발상이라면 도지사의 발전적 행보를 위해서도 빨리 접어야 한다. 양식을 가진 도의원 일부조차 부정적 반응이다. 보도에 따르면 보령 출신 백낙구 의원은 “지방분권에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선 기초단체에 자율권을 많이 부여해야 한다. 이젠 기초단체도 자체적으로 감시와 견제능력이 충분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시·군에 대한 행정사무감사 필요성이 생긴다면 도청 감사기구를 동원할 수도 있고, 도의회는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면 될 것”이라는 합리적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또 “전문성이 없는 광역의원들이 일선을 돌아다니며 스쳐가기식 감사를 한다면 자칫 시·군 공무원들이나 기초의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등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라는 여론도 높다. 도의회에서 시·군 행정사무감사 조례 개정안을 가결하자 시장·군수, 시군·의회, 공무원노조가 일제히 저항하고 나섰다. 위탁·위임사무 감사권을 둘러싼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간 싸움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군의원들은 자체 예산심의 과정에서 지역 출신 도의원들의 선심성 사업비부터 일제히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국회 불신과 정부 독주 등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에 지방의회들까지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민초들은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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