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여행을 하다 보면 각 지명의 이름들을 보면서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에 대한 정겨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가 ‘벼랑길’이다. 사전적 의미는 ‘벼랑에 난 험하고 좁은 길’이다. 그런데 통영에서는 이 ‘벼랑’을 ‘피랑’이라는 말을 써서 ‘동피랑’, ‘서피랑’이라는 말로 우리의 감성을 새롭게 한다. 또 여수지방에서는 ‘벼랑’을 ‘비렁’이라는 사투리로 ‘금오도 비렁길’이라는 표현으로 정겨움을 더한다. 금오도는 돌산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 정상에서 보면 30여 개의 유무인도가 환상적으로 배열돼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섬이다. 금오도 비렁길은 5코스로 구분돼 있다. 1코스 시작점이 함구미 마을이다. 함구미-두포·직포·학동·심포·장지까지 5코스로 구성, 총 길이는 18.5㎞이다. 걷는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을 기준으로 하면 총 8시간에서 9시간 정도 걸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비렁길을 올해 1월과 2월 그리고 5월에 또 걸었다. 내가 이 비렁길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먼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백 숲이다. 동백 씨가 떨어져 나고 싶은 곳에서 나서 자생을 했다. 그래서 너무 조밀하게 밀식돼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동백나무들이 굵은 것은 많지 않고 고만고만한 것들로 서로 경쟁을 하면서 아주 짙은 숲을 이루고 있다. 1월 중순과 2월 말경에 동백꽃을 보러 두 번 갔었다. 일월에 갔을 때보니 피긴 피었는데 생각만큼 많이 피지 않아 서운함이 있었다. 돌아와 동백이 만개한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2월 말에 또 갔다. 1월 보다는 조금 더 피긴 했지만 내가 생각한 만개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떨어진 동백꽃들은 지르밟을 정도였다. 나는 순간 느낌이 왔다. ‘동백꽃은 동시에 모두 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피고지고를 하면서 1월에서 4월 초까지 간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절제된 아름다움을 오래 과시하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동백숲을 걷다보면 갑자기 눈 아래 나타나는 남해의 푸른 바다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뻥 뚫어주는 느낌이 든다. 금오도는 내해에 있는 섬이라서 앞바다의 파도가 크지 않다. 마치 거대한 호수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남해바다는 햇빛의 세기에 따라 짙은 남색에서 옅은 에메랄드 색깔까지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각 코스가 끝나고 시작하는 마을마다 그 바다에서 잡은 해물로 간단한 식사나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채취한 해산물로 만들기 때문에 그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어서 참 좋다.

1월과 2월에는 동백꽃을 보러 금오도를 찾았고 5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는 여정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일 년에 4번씩 만나는 같은 과 동창생들과 함께 금오도를 찾았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만남은 1970년부터 시작했으니까 47년이 된 모임이다. 1년에 한 번씩은 1박을 하면서 서로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금오도 산행을 하면서 정담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추진하게 됐다. 첫날은 오후 배를 타고 들어가 안도 넘어가는 장지에서 심포까지 오는 5코스를 14명이 함께 걸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라 조금은 걱정을 했는데 모두 다 건강관리를 잘해서인지 잘들 걸어서 심포까지 걷고 남면에서 금오도 특산 해산물로 저녁을 함께했다. 다음날 비렁길 중, 가장 아름다운 3, 4코스를 걸었다. 심포에서 시작해서 학동까지 와서 포구 어귀에 있는 선술집에서 해삼과 멍게를 안주 삼아 술 한 잔을 했다. 친구 모두들이 너무 맛있다고 3코스 걷기를 포기하고 계속 먹고 싶다고 난리들이었다. 그들에게 3코스 끝나는 직포에 가면 더 맛있는 것이 있다고 하면서 출발했다. 직포에서 점심을 겸해 맛있는 술 한 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 대화의 중심은 “우리 모두가 특별한 문제없이 지금까지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두 번 째로 크게 아픈 사람이 없어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좋다” 등으로 모두가 오랜 시간함께 함을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임을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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