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 교수

 

최근에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건달농부이고 또 다른 사람은 예덕선생이다. 건달농부는 자칭 농사꾼이지만 농사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밭에 잡초와 독초가 우거져도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다. 다만 그러려니 하고 쳐다볼 뿐이다. 땅 힘을 키울 줄도 모르며 자갈이나 돌멩이를 가려 옥토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씨앗만 뿌리면 자신이 할 일은 다 한 것처럼 여긴다. 작은 노력으로 큰 결실을 얻으려 하는 욕심쟁이 심보를 갖고 있다. 농사꾼이지만 농사짓는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다.

건달농부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지키는 규율과 행실의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일이 없으며 온갖 구설수를 늘어놓기 일쑤다. 마치 속빈 강정과 같다. 그런 꼬락서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후환이 두려워 경원시할 뿐이다.

건달농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어중이떠중이와 어울려서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림새가 멀쩡하고 허우대도 그럴싸하여 눈에 쉽게 띈다. 이들이 하는 짓은 권력에 빌붙어서 약자에게 횡포를 휘두른다거나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을 뿐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는데 혈안이 되어 남에게 베푸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배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무위도식하기 때문에 건달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예덕선생(穢德先生)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의 소설에서 처음 만났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로 청소, 서빙, 잡일 등과 같은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덕을 더러움으로 감추고 세속에 숨어사는 위대한 은자(隱者)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어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연암은 이들이 “아침이 되면 기쁘게 일어나 삼태기를 지고 마을로 들어가 뒷간을 청소한다. 뒷간에 있는 말라붙은 사람 똥, 마구간의 말똥, 외양간의 소똥, 홰 아래 떨어진 닭똥이며 개똥과 거위 똥, 그리고 돼지 똥, 비둘기 똥, 토끼 똥, 참새 똥 따위를 주옥인 양 소중히 긁어 가도 조금도 염치에 손상될 것이 없다. 그 이익을 제 혼자 차지해도 도의에 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치운 똥 덕분에 “왕십리의 무와 살곶이의 순무, 석교(石郊)의 가지·오이·수박·호박이며, 연희궁(延禧宮)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며, 청파(靑坡)의 미나리와 이태인(利泰仁)의 토란은 최상급의 토지에 심는데, 모두 그의 똥을 가져다 쓰지. 그래서 땅이 비옥하고 수확이 많아, 해마다 수입이 육천 푼(육십 냥)이나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지라도 날마다 마을 안과 밖에서 건물의 앞과 뒤로 부지런하게 다닌다. 사람들이 꺼려하거나 싫어하는 일을 하지만 누군가는 꼭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한다. 더러운 똥을 치워 뒷간이나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똥으로 밭을 비옥하게 만드는 거름으로 사용하여 먹음직한 채소를 키우고 수익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게다가 욕심을 내지 않아서 비난 받지않는다. 좀도둑질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니 스스로 덕을 쌓는 것이다.

예덕선생은 비참한 일꾼이다. 열악한 곳에 살면서 치욕스럽게 여기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은 비참하거나 열악하지 않고 치욕스럽지 않다. 불결하고 냄새나는 일을 하지만 먹고 사는 방법은 향기롭다. 처신은 지저분할지 몰라도 도의를 지키는 점에서 고상하다.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선생으로 불릴만하다. 그들 덕분에 깨끗한 건물을 사용할 수 있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건달농부와 예덕선생을 볼 때 깨끗하다는 것에도 깨끗하지 않는 것이 있고, 더럽다는 것에도 더럽지 않은 것이 있다. 좋아 보이는 것에도 좋지 않은 것이 있고, 좋아 보이지 않다는 것에도 좋은 것이 있는 것이다. 또한 하찮게 보이는 것에도 하찮지 않은 것이 있으며, 의미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치 있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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