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학교 교목

 

얼마 전 동료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묻는 말이었다. 웃는 것으로 대답했지만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넋두리하기 위해 물었던 것이다. 본인은 성실하게 강의에 임했지만 엎드려 있거나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수업태도에 화가 났고 다소 거칠게 야단쳤더니 이후 수업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의도는 순수했지만 학생들은 감정 섞인 교수의 말에 반감을 갖게 됐고 강의 능력마저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 과거 학생 때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힘의 균형이 지식 소비자(학생)에게 넘어갔음을 깨닫지 못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함을 호소하는 그에게 그래도 진심을 알아주는 학생들이 있을 거라며 위로했다.

할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말에는 생각이 있고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바르게 말하고 오해 없이 듣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소통의 기본이지만 말하는 자세와 태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표정이나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 억양과 말투, 목소리도 중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점점 더 얼굴을 대면하기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

소통은 결국 관계의 문제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그 속에서 안전과 평안을 추구하는 존재다. 서로 의지하고 연결됐다는 의식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위안하는 기능을 한다. 관계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의미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관계적 동물인 것이다. 그런데 관계가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기에 일방적일 수 있고 관계형성에 왜곡이 일어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수직적 구조는 사회 질서를 만들어내기 유리한 구조였다. 오랜 세월 계급사회가 유지됐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수직적인 관계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하고 갈등을 유발한다. 그래서 역사의 투쟁과정은 수직적인 계급구조를 수평적 평등구조로 바꾸는 것이었다. 역사의 발전은 그렇게 흘러왔고 민주화 과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은 쉽지 않다. 정치적으론 평등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론 전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인간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에 성공한 돼지는 권력을 잡고 나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순식간에 계급과 차별이 생겨나고 진실은 왜곡됐으며 학살이 자행됐다. 모든 것은 ‘동물들의 자유를 위하여’ 라는 말로 포장됐지만 그 자유란 것은 소수의 특별한 동물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모두가 날 때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긴 어렵지만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각자 타고난 능력이 다르고 자란 환경과 교육 수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대등한 조건, 동일한 기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법을 마련하는 것에 동의하는 이유다. 그러나 어떻게 공정한 세상을 만들 것인지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동일한 기회 속에 어느 자리에서건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속에서 말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특권이다. 둘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말을 많이 하고 있다면 그가 바로 권력자이다. 어느 조직이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할 말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란 힘의 분배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지난 정부 소통문제로 모든 국민이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소통 문제가 어려운 것은 권력의 속성 탓이다.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시작된다. 귀를 열어야 마음이 열린다.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들으면 소통이 될 수 없다. 권력의 두 귀는 왼쪽과 오른쪽 양쪽에 고루 열려 있어야 한다. 칭찬과 격려도 있어야 하지만 비판과 질책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듣기 좋은 소리로 힘을 내야겠지만 듣기 거북한 말을 통해 통렬한 반성과 참회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관계의 신뢰는 해야 할 말을 지혜롭고 예의있게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할 때 깊어지는 것이다. 할 말은 하고 살아가자.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