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정치학박사
한나라당의 새 체제가 출범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빗겨 서 있던 홍준표 의원이 당 대표로 등장했다. 홍 대표가 변방에만 있었던 탓인지, ‘버럭, 예측불허’ 등의 수사가 그에게 주어졌다. 여차하면 쏟아내는 격한 표현과 그래도 할 말은 하는 그런 이미지 탓이다. 홍 대표는 항상 빨간색 넥타이를 즐겨 맸다.‘정의와 열정’을 상징하는 묵시적 제스처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박-소장파의 득세가 눈에 띈다. 친박과 맞서 한 때 호사(?)를 누렸던 친이계가 지리멸렬 해진 것 같다. 친이세력이 계파로서의 생존여부는 물론 향후 활동마저도 ‘예측불허’의 형국이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친이세력이 얼마나 살아남을지, 비주류로 전락한 이후 어떤 세 결집을 시도할지. 한나라당과 친이-친박계 그리고 홍 대표 모두에게 ‘예측불허’의 하루하루다.

인간사도 새옹지마(塞翁之馬)이지만 정치도 새옹지마, 권력도 새옹지마다. 세월이 가면 길흉이 뒤바뀌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항상 코 앞의 먹을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부터 챙긴다. 정치인은 최소한의‘진리와 가치’에 대한 숙고조차 안 한다고 정치학자는 비판한다. 정치학자는 도덕적-윤리적 차원에서 비판하고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정치인을 경멸한다. 그러나 학자가 동의하는 대목도 있다. 욕을 먹더라도 누군가는 정치를 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여론에 목을 매고 선거를 통해 생존이 결정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애덤 스위프트(Swift) 교수는 “정치가 합리적인 활동인 것만은 아니다. 유권자의 감정과 혼란 그리고 잘못된 신념과 영합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불가피한 점도 있다.”스위프트 교수는 정치의 현실적 정황 이해에 관대한 편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정치인의 전략적 선택은 어쩔 수 없다.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든 말든 게다가 계파에 들어가서 공천 디딤돌로 삼든, 이 모두가 정당과 정치인이 살아나기 위한 투쟁 도구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에게 아이디어와 정책을 선전하는 데 능란한 정당과 정치인일수록 생명력이 길다. 정치인은 포퓰리스트임을 부인 할 필요가 없다. 유권자에게 내보이는 정책이 통할지 안 통할지에 대한 현실적 감각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직업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좌클릭을 놓고 설전 중이다. 우선 급한 대로 민생부터 챙기겠다는 데, 누가 뭐랄 것인가. 보수도 포퓰리즘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겠단다. 포퓰리즘은 약한 세력이나 진보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홍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재정 파탄이 없는 수준에서 인기영합 하는게 정치”란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식이라면 온 나라가 포퓰리즘에 빠질 것이다. ‘가치와 지속가능한 정책중심의 정치’가 어려워 질 태세다. 우리 정치 현실이 이 지경이니 정치학자들은 개념정리와 현실비판에 바빠지게 생겼다.

정치인끼리도 정치를 한다. 특히 세를 나눠, 패를 갈라서 치열하게 다투기도 한다. 조선조에서도 그랬고, 민주주의가 착근된 지금의 시대에서도 파벌과 파쟁(派爭)은 상존한다. 물론 정치세력 간에도 다양한 철학과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 다원주의의 힘은 그런 다양성의 허용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어떤 가치와 대상을 두고 세력형성이 이뤄지느냐다. 우리처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계파가 나눠진다면 정치선진화는 어렵다. 정권 창출의 계기로 ‘줄 서기’에 또 나선다면, 친이-친박 꼴로 서로가 죽고 살기 식으로 막 나간다. 항상 다툼만 있고 한 정당 내에서도 국정운영 협조가 어렵다. 결국은 소통부재로 다툼과 갈등만 쏟아진다.

홍 대표는 계파에 주력하면 내년 공천을 안 주겠다고 했다. 역시 홍준표 스타일의 발언이다. 갖은 냉대 속에서 겨우 버텨왔더니 계파를 해체하라니, 친박 쪽에서 듣기엔 서운한 표현일게다. 그럼 난, (친박인 데)공천을 못 받는다는 말이냐? 유승민 최고위원의 반박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계파 문제로 한동안 시끄럽게 생겼다. ‘줄 서기와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심사도 복잡해 질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화이부동(和而不同). 친박의 득세에 따른 박근혜 전 대표의 판단이 궁금하다.

공자가 말했다. 정치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하나를 선택하라면,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의와 신뢰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도 존립하기 어렵다. 공자는 정치의 덕목 중에서 백성으로 부터의 신뢰를 으뜸으로 꼽았다.

지금처럼 포퓰리즘의 횡행과 계파 간의 다툼 속에서 국민에게 건내 줄 사탕과 당근도 중요하지만, 정당과 정치인은 어떻게 민심을 얻을 것인가를 더 고심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정치인이 더 솔직하고 정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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